“국회가 입법 서둘렀다면 예비신부 구했을텐데”…서울시의 만시지탄

  • 뉴시스
  • 입력 2019년 7월 10일 10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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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공사장 감리 관련 개선 법률안 2017년 이미 발의
법률 심의 과정 이어지면서 올해 4월말에야 국회통과
앞으로 1년 뒤 개선 법률안 시행…사고 가능성 여전해
국회 국토교통위-국토부, 입법지연 아닌 면밀검토 입장

서울 서초구 잠원동 건물 붕괴사고로 결혼반지를 찾으러 가던 예비신부가 숨진 가운데 국회 입법절차가 좀 더 빨리 진행됐다면 사태를 예방할 수도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와 주목된다.

철거공사장 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이미 2017년 초에 발의됐음에도 국회 내부 논의가 길어지면서 해당 법안은 올해 4월말에야 통과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게다가 이 법은 내년 5월에야 시행될 예정이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비판이 예상된다.

2017년 1월 종로구 낙원동 철거공사장 붕괴사고로 2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당한 후 서울시는 철거공사장 안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제도 변경에 착수했다.

서울시가 확인한 결과 철거공사는 건물의 노후도, 인근 건축물에 미치는 영향, 진동 등으로 신축공사보다 훨씬 까다롭고 어려운 공사임에도 안전 측면에서 매우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이에 서울시는 일정 규모 이상 건축물을 철거할 때는 사전 안전심의를 실시하도록 ‘서울시 건축 조례’를 개정했다. 그러나 철거공사 관리의 핵심인 ‘상주 감리제도 도입’ 관련 조항을 조례에 넣는 데는 실패했다. 건축법에는 신축공사에는 감리인을 두는 조항만 있을 뿐 철거공사에까지 감리인을 두도록 하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서울시는 조례 개정 작업을 뒤로 미뤘다.

그럼에도 철거공사의 특성상 상주감리인 도입은 필수적이었기에 서울시는 제도 개선을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국토교통부와 행정안전부에 철거공사에도 감리인을 의무화하는 ‘책임감리제’ 도입을 건의했다. 또 현행 건축법상 ‘신고제’로 되어 있는 철거공사를 ‘허가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이런 서울시의 행보에 호응했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등 13명은 2017년 2월28일 건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개정안에서 “현행 건축법상 건축물의 규모에 관계없이 철거신고만으로 철거가 가능함에 따라 안전심의 등 전문가 사전검증 절차가 부재하고 공사비 절감을 위해 영세 비전문업체에 의한 주먹구구식 철거공사가 만연돼있다”며 “건축물을 철거하는 경우에도 공사감리를 하도록 함으로써 건축물의 철거공사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입법과정은 지지부진했다. 해당 건축법 개정안은 같은해 12월12일에야 국토교통위원회에 상정됐고 이후 곧바로 계류됐다.

당시 국토교통위 수석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국토교통부는 건축물의 사용 및 유지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가칭) 건축물 관리법 제정안을 준비 중”이라며 “국토부는 부처 협의와 입법 예고 과정 등을 거쳐 내년도 중 발의할 예정이므로 이번 개정안은 동 제정안과 함께 심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률 개정작업이 중지된 사이에 서울시내에서는 철거공사장 사고가 지속됐다.
2017년 1월7일 종로구 낙원동에서 지상1층 슬래브가 붕괴되면서 2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이후로도 2017년 4월22일 강남구 역삼동 지하1층 슬래브 붕괴(부상 2명), 2017년 12월28일 강서구 등촌동 이동식크레인 전도(사망 1명, 경상 1명), 지난해 3월31일 강동구 천호동 굴삭기 전도(부상 2명), 지난해 6월16일 동작구 신대방동 지상 4층 슬래브 철거중 저층부 붕괴(부상 1명) 등 인명사고가 계속됐다.

시는 조례 개정 후 사전 철거 심의가 이뤄졌음에도 법률에 관련 규정과 처벌조항이 없는 탓에 건축주와 시공자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다시금 입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는 행정안전부 사고조사담당관에 보낸 공문에서 “철거공사장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안전관리체계의 정비가 필요해 붙임과 같이 관계 법령 개정을 건의하오니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검토 반영해 주시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공문에는 관계법령상 조항과 개정 방향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이 법안은 그로부터 9개월 뒤인 올해 3월에야 되살아났다. 3월14일 열린 국토교통위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는 이 법안 내용을 포함한 건축물 관리법 대안에 포함시켰다. 대안에는 건물 철거 허가제 도입, 철거공사 감리자 지정 의무화 등 서울시가 건의했던 내용이 포함됐다.

대안은 국토교통위 회의를 거쳐 4월5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 재석 202명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2017년 초부터 시작된 서울시의 요구가 2년이 넘어서야 관철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법률 시행일이었다. 이 법률은 4월30일 공포됐지만 바로 시행되지 않았다. 부칙에 ‘이 법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시행이 늦춰지는 상황에서 이달 4일 서초구 잠원동 철거공사 현장에서 예비신부가 숨지는 참변이 발생했다.

서초구가 철거 심의를 통해 안전 강화를 요구했음에도 현장에서 감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서울시가 우려했던 점이 그대로 현실화 된 셈이다.

서울시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시내 전역에 있는 철거공사장에 대한 전수 안전점검에 착수했다. 당장 또 다른 사고 발생만은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그럼에도 제도적 미비점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하다.

시 관계자는 “신축은 엉터리로 하면 엉터리 건물이 나오지만 철거는 엉터리로 하든 규정을 지키든 철거하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며 “규정을 다 지켜가면서 한달 동안 철거한 경우와 2~3일 만에 후딱 철거한 경우의 결과물이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거과정을 감독할 감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법안 통합 심사를 이유로 입법을 지연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한 국회는 해명을 내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관계자는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국회의원들이 건축물관리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입법활동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법안 소위를 할 때 법안의 문제점을 수정한다. 간단한 것은 짧은 시간 안에 되지만 제정법은 조정 과정에서 많은 의원들의 의견이 나온다”며 “최종적인 안건이 나오기까지 심사하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왜 이제 통과됐냐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지만 소위 기간이 모두 심사 기간이고 필요한 과정”이라며 “기존 법과 충돌되거나 중복되는 것은 없는지, 또 건축물 보유자와 관련된 신뢰보호원칙 차원에서 업계와 이해관계자들의 얘기를 듣는 게 중요했다”고 덧붙였다. 국토부 역시 입법을 고의로 지연시킨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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