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원칙” vs “일단 검거”…국제PJ파 부두목 자수제안 거부 논란

공개수사 전환도 쉽지 않아 사건 장기화 우려

국제PJ파 부두목 조모씨(60)의 공범으로 지목돼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용의자 2명이 공용주차장에 용의차량을 유기한 후 인근 사거리에서 택시에 승차하는 장면.(경기북부경찰청 제공)

50대 사업가 살해 혐의를 받고 도주 중인 폭력조직 국제PJ파 부두목이 자수의사를 표명했지만 경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이 ‘조건부 자수는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반면 ‘신병확보가 우선 아니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광주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찰의 추적을 받아온 국제PJ파 부두목 조모씨(60)는 지난달 23일 가족을 통해 경찰에 자수의사를 밝혔다.

조씨는 “살인이 아니다. 죽일 의도가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대신 조건을 붙였다.

자신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충분히 들어달라는 것과 광주에서 수사를 받게 해달라는 것 두 가지였다. 경찰에 조건부 자수를 제안한 셈이다.

조씨는 자신이 사업가 A씨(58)에게 투자한 돈을 회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A씨가 죽어버리면 돈을 받지 못하게 되는데 ‘죽일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적당히 협박해 돈을 받아내려 했으나 폭행과정에서 A씨의 신병에 문제가 생기면서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조씨의 조건부 자수 제안을 받은 후 내부검토를 거쳐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조건부 자수’는 받아줄 수 없다는 게 수사 원칙이라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경찰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수사에서 조건부는 받아줄 수 없다. 수사는 객관적이고 변함없이 확고부동해야 한다”며 “체포의 대상, 수사의 대상일 뿐인 사람이 조건을 달고 들어오는 것 자체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조씨가 제안한 수사권과 관할 문제는 이미 결정된 사항으로 관할 이전은 자수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부분도 고려됐다.

앞서 경찰은 공범이 경기도 양주에서 검거됐고, A씨 주거지가 수도권에 있는 점 등을 이유로 수사 주체를 경기북부청으로 정했다.

외부에서 보더라도 수사 주체권이 경기북부청에 있는데 광주에서 조씨의 자수를 받아주고 수사를 진행했다가 만약 형량 등이 낮게 나왔을 경우 경찰과의 유착 의혹 등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이유로 꼽았다.

조씨가 자수에 조건을 붙였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의심하는 부분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스스로 떳떳하고 정말로 억울하다면 어딜 가더라도 다 자수할 수 있다. 왜 하필 광주만 고집하겠느냐. 다른 꿍꿍이가 있는데 재고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조씨가 내건 조건은 어떤 수사기관에서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조건부 자수’를 받아주는 척하고 신병을 확보해 관할 청으로 보내 수사할 경우에 대해서는 “조씨가 입을 다물고 수사에 협조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조건부 자수’를 거절한 데는 나름의 원칙과 판단이 적용했지만 일각에서는 수사가 진행된 지 2주 가까이 되어가지만 조씨의 행방이 묘연하면서 ‘신병확보’가 우선이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일단 검거를 해놓고 수사를 진행하는 게 맞지 않았냐는 지적이다. 또 조건부 자수에 대한 원칙이나 유연함 등 충분한 논의가 필요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은 내부적으로 공개수사 전환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사건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공개수사 전환을 검토할만큼 긴급성이 없다”며 “공개 수사와 관련해서 아직 내부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그는 “보통 도주자금 때문에 2차 범행이 우려되는 경우 공개수사 전환을 검토하는데 이번 사건은 그런 사건과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또 “조씨의 신원이 명확하고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도 고려됐다”고 덧붙였다.

조씨가 거대 폭력조직의 부두목으로 자금이 부족할 일은 없고 이미 경찰의 주요 관리 대상이었다는 점을 이유로 꼽혔다.

그렇지만 또 다른 범죄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가정하는 것은 너무 안일한 판단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광주시민 박모씨(48)는 “그래도 살인을 저지른 사람인데 2주가 되도록 경찰이 검거하지 못하고 있는데 우선 자수를 받아 신병을 확보한 후 수사를 진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재 가족을 통해 자수의사를 전달한 후 잠적한 조씨의 행방을 추적 중이다.

앞서 조씨는 지난 20일 오전 1시10분쯤 공범 2명, 자신의 동생(59)과 함께 피해자 A씨를 승용차에 태워 서울 논현동까지 이동하고 살해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A씨는 지난 19일 조씨 등을 만난 뒤 실종됐으며 이틀 뒤인 21일 오후 10시30분 경기도 양주시의 한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 뒷좌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온 몸에서는 구타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공범 2명은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동생은 공동감금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조씨는 2006년 ‘건설 사주 납치사건’을 주도한 뒤 5개월간 도피하다 체포됐고 2013년에는 범서방파 두목을 납치·감금·폭행하고 4개월만에 경찰에 검거된 전력이 있다.

(광주=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