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 의사 부인’ 가네코 후미코, 옥사 92년 만에 건국훈장

  • 뉴스1
  • 입력 2018년 11월 15일 15시 35분


홍매영 선생 등 128명 독립유공자 포상
오는 17일 제79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장서 수여

가네코 후미코 여사와 박열 의사 (박열의사기념관 제공)
가네코 후미코 여사와 박열 의사 (박열의사기념관 제공)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 여사가 옥사한 지 92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훈장을 받는다고 국가보훈처가 15일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오는 17일 제79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안맥결 여사, 가네코 후미코 여사, 홍매영 선생 등 여성 32명을 포함해 총 128명의 독립유공자에게 건국훈장(28명)과 건국포장(17명), 대통령표창(83명)을 추서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28명, 건국포장 17명, 대통령표창 83명으로, 포상자 가운데 생존 애국지사는 없으며 여성은 32명이다.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순국선열의 날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각각 수여된다.

1923년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을 다룬 영화 ‘박열’에서 박 의사와 함께 일본정부를 통렬하게 조롱했던 가네코 여사는1904년 1월25일 요코하마에서 태어났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가네코 여사는 친척집을 전전했으며 주위의 멸시와 학대를 받으며 괴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아버지가 호적에 올리지 않아 무적자 신분으로 유년시절을 보내야만 했으며 그 때문에 소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어도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열 살이 되던 1912년에 처음으로 외할아버지의 다섯째 딸로 호적에 올라 가네코라는 성을 갖게 됐고 친할머니인 사에키 무쓰가 찾아와 함께 살고 있는 딸 부부에게 자식이 없어 그를 양녀를 들이겠다며 충북 청원군 부용면 부강리로 데리고 왔다.

이후 부강초 전신 심상소학교 4학년에 편입했고, 기록에는 대부분 과목에서 ‘갑’(지금의 ‘수’)을 기록할 만큼 성적이 뛰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권위주의적인 할머니와 고모의 차가운 학대와 하녀와 같은 생활을 견디다 못해 몇 번이고 자살을 기도하는 등 비참한 삶을 이어갔다. 일본인이었지만 조선에서의 생활은 노예나 다름 없었다.

그러다 그는 부강면의 3.1운동을 진압하는 왜경을 목격하며 전제주의에 대한 저항 의지를 키웠고 1919년 일본으로 돌아간뒤 박 의사를 만나 함께 무정부주의 운동을 했다.

가네코 여사는 박문자(朴文子)란 필명으로 활동하면서 박열 의사와 함께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에 저항했고 일왕 부자를 폭살하기 위해 박 의사를 도와 폭탄을 반입하다가 체포됐다.

이후 사형 판결을 받은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옥살이 중 1926년 7월 숨져 남편 고향인 문경에 묻혔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앞으로도 독립기념관을 비롯한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지방자치단체, 문화원 등 관련기관과의 사료수집 협업 체제 강화를 통한 국내외 소장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함으로써, 알려지지 않은 여성과 무명의 의병 등 독립유공자 발굴·포상 사각지대를 해소하는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