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창문 깨지고 물 들어와”…사이판 관광객 귀국 행렬

  • 뉴시스
  • 입력 2018년 10월 28일 21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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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위투’(Yutu) 강타로 사이판에 발이 묶였던 한국 관광객들이 28일 대거 입국했다.

이날 오후 7시께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E출구는 사이판으로 여행 갔다가 귀국하는 가족과 지인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딸과 손주 둘을 기다리던 임석태(62)씨는 “딸에게 ‘호텔에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카카오톡이 왔더라. 그래도 집까지 데려다주려고 왔다”고 말했다. 임씨의 딸과 손주들은 23일 사이판에 도착해 이날 아침 우리 정부 군용기를 타고 괌으로 옮겨졌다.

임씨는 “호텔에 잘 있다고 하니 무슨 일이 생기기야 하겠나 싶어서 걱정하지 않았다”면서도 기자와 대화하는 내내 초조한 얼굴로 상황 알림판을 주시했다.

오후 7시가 넘어가자 사이판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를 만나 고립됐던 한국 관광객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지친 얼굴이었다.

취재진이 몰려들어 소감을 묻자 한 남성은 “가족들이 다 너무 힘들었다. 쉬고 싶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은주(39)씨는 “월드리조트 6층에 묵었는데 새벽 두시에 복도 창문이 깨지고 객실로 물이 들어왔다. 천장이 뚫려서 비도 들이치더라”며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가족 7명이 함께 여행길에 올랐던 이씨 일행도 이날 아침 우리 군용기를 타고 괌으로 이동했다. 이후 괌에서 제주항공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씨는 “아기들이 열살, 여섯살로 어린 데다 어머니 심장약이 떨어져서 오늘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며 “사흘 여행인데 심장약을 충분히 챙겨가지 않아서 위급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21일 사이판에 도착했던 정원준(16)군도 이들처럼 괌에서 왔다.

정군은 “피해가 그나마 적었던 북쪽 끝에 있었다. 현지 가이드 말로는 가로등이 400개가 뽑혔다더라”며 “상태가 심각한 사람은 바람 소리만 들어도 무섭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정군은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냐는 연락이 많이 왔는데, 자가발전기로 호텔에 전기가 공급돼서 휴대전화로 친구들과 계속 연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공항에 발을 디딘 최윤서(9)양은 “월드리조트에 있었는데 물이 막 들어오고 천장에서도 물이 샜다.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기억을 돌이켰다.

최양은 “무서웠다. 밤에 자다 깨서 조금 울었다”면서도 좋지 못한 기억을 털어낸 듯 밝게 웃었다.

이날 오후 7시께 사이판 여행객 258명을 태운 아시아나 OZ6263편(B777·302석)이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이중 한국인은 93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이판에서 인천공항으로 직항한 첫 임시편 항공기다.

외교부 관계자는 “전기 공급이 불안정하고 항공사 시스템 불능으로 현장 판매가 안 됐다. 어쩔 수 없이 기존 예약자 중 빠른 일자부터 발권을 진행한 탓에 중국인 탑승객이 더 많았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와 항공업계는 이날 애초 임시편 5대를 사이판으로 보내 한국인들을 태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이판 항공당국이 공항 상황을 고려할 때 우선 1편만 운행할 수 있다고 통보해 나머지 임시편은 29일부터 운항한다.

정부 군용기로 사이판에서 괌으로 이동했던 관광객 중 146명도 비슷한 시간대에 인천공항에 내렸다.

【인천=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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