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찾아온 맨발족의 발을 촉촉하게 해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0일 03시 00분


대전 계족산 황톳길에 물 뿌리는 살수차 운전기사 정병일 씨
“비오는 날이 유일한 휴일이에요”

대전 계족산에서 황톳길 살수작업을 하는 정병일 씨.
대전 계족산에서 황톳길 살수작업을 하는 정병일 씨.
8일 오전 6시 대전 대덕구 장동 계족산 황톳길. 2t 살수차가 계족산 임도 14.5km에 걸쳐 조성된 황톳길에 연신 물을 뿌리고 있었다.

“황톳길이 촉촉해야 걷는 사람들이 촉감을 제대로 느껴요.” 살수차 운전기사 정병일 씨(74)는 이 일을 한 지 7년째다. 황톳길을 조성한 ㈜맥키스컴퍼니 직원들은 그를 ‘작업 부반장’이라 부른다. 반장은 이 회사 조웅래 회장이다.

“적잖은 월급을 주면서 계족산 황톳길에 물 뿌리는 일만 하라고 해서 처음에 어리둥절했어요.” 그는 세계적인 전선전문기업인 N사에 다니다 10년 전 퇴직했다. 제2의 인생을 위해 재취업을 준비하던 중 대전에 사는 고향(전남 고흥)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형님, 어떤 도깨비가 있는데요, 사비를 털어 산에 황토를 깔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에요. 물 뿌리는 사람이 필요하답니다.”

후배가 말한 ‘도깨비’는 바로 14년째 계족산 임도에 사비를 털어 황톳길을 조성한 맥키스컴퍼니 조웅래 회장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8일 서울 잠전초등학교 스카우트 학생들이 촉촉한 계족산 황톳길을 걷고 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8일 서울 잠전초등학교 스카우트 학생들이 촉촉한 계족산 황톳길을 걷고 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정 씨는 후배의 제안을 듣고 계족산 현장에 와 봤다. 그리고 맨발로 황톳길을 걸어봤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몇 번 반복하자 온 몸에 피로가 가셨다. 산 속 황톳길을 2, 3시간 걷자 건강도 좋아졌다. “이런 일이라면 기꺼이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이후 그는 매일 아침 일찍 계족산에 출근해 황톳길에 물을 뿌린다. 특히 비가 안 올 때에는 금방 굳어지는 황토 특성 때문에 밭을 갈 때 사용하는 기계를 이용해 황토를 뒤엎는 일도 한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돈도 벌지만 계족산에 오는 사람들이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환희를 저도 느끼죠.” 올여름 대전시내 기온이 39도까지 올라가자 그는 회사 측의 요청으로 대전시내 거리에 3주 동안 살수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의 유일한 휴일은 비 오는 날이다. 자동으로 살수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정성들을 모아 조성된 계족산 황톳길은 과거에는 대전시민이 주로 찾았으나 이제는 전국에서 찾는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에 3년째 선정될 정도다. 특히 최근에는 단체관광이 늘면서 계족산 입구에는 대형 버스가 수십 대씩 서 있다. 외지 초등학생들의 수학여행 장소로도 부각되고 있다. 이날도 서울 잠전초등학교 스카우트를 비롯해 14개 학교 초등학생 500여 명이 단체로 찾았다.

정 씨는 “황톳길도 명품이지만 매주 주말과 휴일에 열리는 야외 음악회 ‘뻔뻔음악회’와 음악회장 앞에서 엽서편지 쓰는 일 역시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쁨”이라고 소개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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