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은 1963년 대학생 때 동인제 극단 회로무대(回路舞臺)를 창단한 이래 50여 년 동안 한국의 전통적 소재와 공연기법에 전 세계의 연극적 요소를 더해 자신만의 독자적 연극세계를 구축해 온 인물로 평가 받는다.
1940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자신의 학창시절에 대해 “중고등학교 시절을 불량하게 보내기도 했다. 아버지의 납북 사실과 전쟁 때 목격한 참상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라도 제 자신을 감춰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맨얼굴로 사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는가’ 가슴에 새기게 됐다. 세상은 맨살로 부딪힐 데가 아니다. 철가면을 쓰자.’ 결심했다. 제 모습이 세상에 약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강해지려고 노력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공부를 소홀히하고 지내던 그는 어느날 부친의 환상을 본 후 수덕사로 들어가 1년 6개월 간 살았고, 이를 본 어머니가 철학이 적성에 맞겠다는 지레짐작에 연세대 철학과에 보냈다고 밝혔다.
오태석은 1984년 제자들과 함께 극단 목화(목화레퍼터리컴퍼니)를 창단했고 약 70편의 희곡을 썼다. 영화계에도 목화 출신 유명 톱 배우들이 많다.
대표작으로는 초분(1973), 태(1974), 춘풍의 처(1976), 자전거(1984), 부자유친(1989),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1990), 내 사랑 DMZ(2002), 만파식적(2005), 용호상박(2005), 백년언약(2009) 등이 있다.
국립극장 예술감독,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교수 등을 지냈으며 2014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오태석의 성추문은 연극인들이 소셜미디어(SNS)에 ‘미투(Me too)’ 운동에 동참하는 뜻으로 올린 글로 불거졌다. 이들은 가해자의 실명을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OO연출가’, ‘서울예대 극단을 운영하는 극작과 교수’,‘OTS’,‘연극계 대가’등 당사자를 쉽게 추정할 수 있는 암시를 글에 드러냈다.
연극계에서 활동했던 여성 A씨는 “‘백마강 달밤에’라는 연극 뒤풀이에 참석했었는데, 그 연출가는 술잔을 들이켜는 행위와 내 허벅지 부근을 주무르고 쓰다듬는 행위를 번갈아 했다”고 썼다. 백마강 달밤에는 오태석이 대표인 극단 목화에서 그가 직접 연출한 대표작이다.
모 극단 연출가 B 씨는 ‘2002년 서울예대 극작과에 입학했을 때 극단을 운영하는 극작과 교수’에게 성추행당했다고 폭로하며 “밥자리, 술자리가 잦아지며 (중략)손부터 시작해 허벅지, 팔뚝 살 등을 만졌다”, “(차 안에서)춥다고 덮으신 무릎 담요를 같이 덮자시면서 허벅지에 손을 올리셨다”고 밝혔다. 당시 서울예대 극작과 교수로 극단을 운영한 인물은 오태석이 유일하다.
극단 목화 출신 배우 C 씨는 소셜미디어에서 성추행 인물에 대해 ‘ㅇㅌㅅ’이란 이니셜을 쓰며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까닭은 단 한 번만이라도 책임 있는 어른의 모습을 기대했던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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