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크레인 57%가 수입품… 제조일 속여도 깜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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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부터 운용까지 ‘부실 덩어리’

“크레인 사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탓이에요.”

11일 경기 남양주의 한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만난 A 씨(41)가 마치 당연한 듯 말했다. 그는 이곳의 안전관리를 맡고 있다. A 씨는 타워크레인 설치·해체 교육 이수 증명서 한 장을 보여주며 “우리 현장의 작업자는 2007년에 현장교육 6시간 받고 딴 이 자격증으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품 결함 여부는 현장에서 알 수가 없다. 임대업체가 관리하는데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9일 경기 용인에서 또 붕괴 사고가 일어나자 건설현장 관계자들은 “타워크레인 사고는 우연이나 실수보다 누적된 부실 탓”이라고 입을 모았다. 등록부터 설치, 해체까지 곳곳에 안전불감증이 자리 잡고 있었다.

○ 5.8m 올릴 때마다 부실도 쌓인다

해외에서 수입한 중고 타워크레인은 제조국과 제조연도 등 제품정보가 불확실한 경우가 많다. 수입한 크레인은 소유주가 지방자치단체에 직접 등록한다. 그러나 제조연도 등이 확실치 않은 경우 임의로 표시하거나 아예 고의로 조작해도 이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중고가 신제품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 용인의 사고 크레인 역시 기계에 쓰여 있는 제조연도는 2012년이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가 관리하는 건설기계 등록현황에는 2016년으로 표기돼 있다. 이는 크레인을 수입한 해다. 현재 국내에 등록된 타워크레인 중 수입 크레인은 전체(6074대)의 절반을 넘는 57%(3475대)다.

제품 검사도 곳곳에 구멍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정부 위탁을 받아 검사를 진행하는 6개 기관이 ‘불합격 판정’을 내리는 비율은 최저 1.7%부터 17.9%까지 천차만별이다. 이번 사고 크레인은 한 달 전 6개월마다 시행하는 정기검사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 해당 크레인 검사기관은 ‘불합격 판정’ 비율이 가장 낮은 곳으로 알려졌다. 이명구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직접 크레인에 올라가지 않고 땅에서 서류만 보고 검사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검사를 까다롭게 하면 업체들이 싫어하니 검사를 허술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실한 검사 아래서 크레인 설치와 사용은 늘 위험할 수밖에 없다. 안형준 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 연구원장은 “부품을 조립해 1단(5.8m)씩 쌓아가며 설치하는 크레인 구조상 부품이 매우 중요한데 관리는 취약하다”고 말했다. 현장을 바꿔 가며 장기간 조립과 해체를 반복하다 보니 같은 제조사가 아닌 부품을 쓰는 경우도 많다. 이 과정에서 규격에 맞지 않는 ‘불량 부품’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크레인 운용 인력의 전문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타워크레인을 설치·해체할 수 있는 자격증은 산업안전공단에서 36시간 교육을 받으면 발급받는다. 이론교육 30시간, 현장교육 6시간이다. 정란 단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고공에서 진행되는 위험 작업인 데다 매번 기종이 다른 크레인에 대한 매뉴얼이나 특성을 고려할 때 최소 3개월의 현장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정부 대책은 또 ‘일제 점검’ ‘엄중 조치’

국토부는 연말까지 전국 건설현장에서 운영 중인 크레인에 대해 지방자치단체 등과 함께 일제 안전 점검을 벌인다고 11일 밝혔다. 아울러 지난달 발표한 ‘타워크레인 재해 예방대책’과 관련해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은 당초 계획보다 추진 시기를 앞당기기로 했다. 특히 20년 이상 된 노후 크레인에 대한 사용 제한, 부품 인증제 도입, 중요부품 내구연한 규제 등을 위한 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당초 ‘내년 6월’에서 ‘내년 3월’로 법안 제출 시기를 앞당길 방침이다.

사고를 수사 중인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이날 사고 당시 현장 관계자들을 상대로 사고 원인 조사에 집중했다. 경찰은 프랑스제 크레인 수입 과정과 제작연도, 부실 부품 사용 여부 등 기계적 결함이 있었는지도 수사 중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크레인 조종실 레버 등에 대해 감식했다. 경찰은 “현장에 폐쇄회로(CC)TV가 있지만 크레인이 촬영되지는 않았다. 국과수 감식 결과 등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예윤 yeah@donga.com·정임수 / 용인=남경현 기자
#타워크레인#수입품#제조일#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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