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 제 손으로 ‘아이돌 대통령’ 뽑기… “투표, 재미있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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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화제]선관위 ‘일일 민주주의 선거교실’ 가보니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하는 ‘일일 민주주의 선거교실’에 참여한 경기 수원시 매현중학교 1학년생들이 ‘매니페스토와 약속’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다. 학생들은 모의 회장 선거에 내세울 공약을 직접 포스트로 작성했다. ‘화장실 거미줄을 제거하겠다’, ‘비 오는 날 현관에 우산을 비치하겠다’는 등의 공약이 이채롭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하는 ‘일일 민주주의 선거교실’에 참여한 경기 수원시 매현중학교 1학년생들이 ‘매니페스토와 약속’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다. 학생들은 모의 회장 선거에 내세울 공약을 직접 포스트로 작성했다. ‘화장실 거미줄을 제거하겠다’, ‘비 오는 날 현관에 우산을 비치하겠다’는 등의 공약이 이채롭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방탄소년단 8표, 트와이스 6표, 엑소 4표, 여자친구 2표. ‘아이돌 대통령’에 방탄소년단 당선!”

최근 경기 수원시의 한 중학교 1학년생 20명이 ‘아이돌 대통령선거’에 참여해 투표한 결과다. 투표율 100%를 기록한 이 선거에 참여한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했다. 본인이 지지한 아이돌 그룹이 당선되지 못했다는 실망감은 없었다. 개표 후 아이들은 그저 “누구 찍었어?” “비밀투표야. 그거 말하면 안 된다고 배웠잖아” “오호∼ 투표, 재미있네”라며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투표 경험을 공유했다.

중앙선관위 운영하는 ‘민주주의 선거교실’

이 중학생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하는 ‘일일 민주주의 선거교실’에 참여하기 위해 학교 음악교실에 모였다. 선관위는 투표권 없는 청소년들이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2015년부터 ‘민주주의 선거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수업은 △민주주의와 선거(이론수업) △매니페스토와 약속(정책선거·토론 체험) △선거! 함께 해봐요(투·개표관리 체험) 등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는 낯선 주제였다. 그래서 강의는 주로 체험형 학습 형태로 진행됐다. 아이돌 대통령을 뽑는 모의 투표, 매니페스토 공약을 직접 만들어 학생회장 선거를 치르는 등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수업이 한창이었다. 조별 모둠 형태로 책상이 배치된 교실에는 모둠당 3∼4명으로 나눠 앉아 수업에 참여했다.

교실 가운데에는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전 모의 투표 시스템이 설치됐다. 투표함, 투표소, 모의 신분증, 모의 투표용지, 본인 확인기 등 실제 사전투표 현장에 배치되는 기기들이 놓여 실제 투표현장과 다름없는 투표소였다. 아이들에게는 평소 경험하기 어려운 ‘어른들의 세계’를 직접 체험할 좋은 기회인 셈이다.

선거는 ‘아이돌 대통령’을 뽑는 투표. 학생들은 기호 1번 빅히트당의 방탄소년단, 기호 2번 JYP당의 트와이스, 기호 3번 SM당의 엑소, 기호 4번 쏘스뮤직당의 여자친구가 인쇄된 투표용지를 저마다 한 장씩 받아들었다. 실제 아이돌 그룹이 대통령 후보로, 각 아이돌의 소속사가 정당 역할을 했다. 투표 진행도 학생들이 했다. 학생 두 명이 선관위 위원 역할을 해 모의 신분증을 제시하는 학생들의 신원 확인과 투표용지 발급을 도왔다.

왁자지껄 즐거운 분위기 속에 수업은 체험을 통해 주목도를 높이고 집중력을 유지했다. 좋은 공약, 선거의 중요성 등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 각자 선거 포스터를 만들어 봄으로써 교육 효과를 높였다. 학생들은 회장 선거를 치른다는 가정하에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공약 위주로 포스터를 작성했다. 조별로 △급식이 맛있는 학교 △건의함 활성화 △동아리 활성화 △한 달에 한 번 ‘사복데이’ 만들기 등을 공약으로 내건 포스터를 만들었다.

교육 효과는 만점이었다. 끝날 때까지 수업에 대한 집중도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남수현 양(13)은 “아직 투표권이 없지만 수업에서 배운 매니페스토의 중요성을 생각하면서 실생활에 꼭 필요한 정책과 공약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투표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김준서 군(13)도 “아직 투표권이 없지만 나중에 유권자가 되면 투표에 꼭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책·공약 선거를 위한 필수조건

서울 중구 성동글로벌경영고 3학년 학생들이 지난달 27일 중앙선관위가 주최한 새내기 유권자 교육에 참여해 내년 지방선거에 대비한 모의투표를 하고 있다.
서울 중구 성동글로벌경영고 3학년 학생들이 지난달 27일 중앙선관위가 주최한 새내기 유권자 교육에 참여해 내년 지방선거에 대비한 모의투표를 하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민주주의 교육의 핵심은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라는 것이었다. 소속 정당이나 인물 등을 기준으로 이미지 투표를 하기보다 실질적으로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내세운 후보를 고를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유권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후보자를 선택하고 있을까. 학생들이 배운 것처럼 정책과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투표하는 유권자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동아일보는 1일 대통령 선거(17, 18, 19대) 및 총선(18, 19, 20대)에서 유권자들의 후보자 선택 기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조사한 선관위 자료를 입수해 살펴봤다. 선관위는 전국 만 19세 이상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각각의 선거에 대해 선거기간 전, 선거기간 중, 선거종료 후로 조사 시점을 나눠 △인물·능력 △정책·공약 △소속 정당 △정치 경력 등 어떤 기준이 특정 시점의 후보자 선택 기준이 되는지 조사했다.

자료에 따르면 모든 선거에서 선거기간 전에는 인물·능력과 정책·공약의 비중이 소속 정당보다 높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선거가 임박할수록 정책 및 공약 대신 소속 정당을 보고 후보자를 선택한다고 응답한 비중이 비약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5월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정책·공약의 비중은 35.0%(선거기간 전), 36.9%(선거기간 중), 30.8%(선거종료 후)로 줄어들었다. 반면 소속 정당을 보고 후보를 선택했다고 응답한 유권자의 비중은 각각 4.0%, 8.2%, 11.4%로 늘어났다.

지난해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정책과 공약을 보고 후보자를 선택하겠다고 응답한 유권자 비중은 선거기간 전(27.3%)과 선기기간 중(28.2%)에 비해 선거종료 후(22.4%)에 감소했다. 반면 소속 정당을 후보자 선택 기준으로 삼은 유권자 비중은 16.0%, 18.9%, 24.2%로 늘었다.

선관위 측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유권자들이 여전히 소속 정당 등 후보자의 이미지를 보고 투표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이성적으로는 정책과 공약을 후보자 선택의 최우선 순위로 삼겠다고 생각하지만 선거가 임박할수록 후보자의 이미지나 정당이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는 일종의 아노미 현상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서인덕 선거연수원장은 “정책과 공약을 꼼꼼히 점검한 후 후보자를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가장 잘 치를 수 있는 방법이다. 건강한 민주시민 양성을 위해서라도 민주주의 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시민교육의 산실(産室) ‘선거연수원’

지난달 24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선거연수원에서 열린 수원 신청사 개원식에서 관계자들이 ‘민주시민의 산실’이라고 적힌 표석 제막식을 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지난달 24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선거연수원에서 열린 수원 신청사 개원식에서 관계자들이 ‘민주시민의 산실’이라고 적힌 표석 제막식을 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선관위는 국민을 대상으로 민주주의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민주시민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인 선거연수원을 새롭게 단장했다. 서울 종로구에 있던 선거연수원의 규모를 키워 지난달 24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로 옮겨 ‘수원청사 시대’를 시작한 것이다.

서 원장은 “민주시민교육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관련기관·단체와의 협업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더욱 다양화할 것”이라고 각오를 말했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일일 민주주의 선거교실#중앙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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