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에서 온 사슴, 섬을 먹어치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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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토끼 등 방목 개체수 급증… 농작물-나무 등 모조리 뜯어먹어
마을까지 내려와 주민 안전도 위협… 소유권 분쟁에 포획 못하고 골머리

전남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는 뭍에서 39km 떨어져 있다. 영광군 홍농읍 계마항에서 배를 2시간이나 타고 가야 도착한다. 생김새가 말안장을 닮아 안마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면적은 2.9km². 현재 30가구 주민 170여 명이 살고 있다. 그러나 안마도의 주인은 이들이 아니다. 어느 순간 안마도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사슴으로 바뀌었다.

○ 낙도 점령한 사슴 떼

3일 안마도의 한 폐교에 들어서자 풀을 뜯던 사슴 여러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급히 도망갔다. 섬 곳곳에는 최대 3m 높이의 그물망이 설치돼 있다. 사슴 침입 방지용이다. 안마도 사슴들의 먹성은 보통이 아니다. 벼와 마늘 등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운다. 일부 주민은 농사를 포기했다. 사슴들은 산에서 나무와 풀까지 싹쓸이하고 뿔 갈이 때는 조상의 묘소까지 파헤친다. 주민 이모 씨(52)는 “겨울에는 사슴들이 마을까지 내려오고 잘 도망가지도 않는다”며 “발정기에는 뿔로 공격할까 봐 무서울 정도”라고 말했다.

안마도에 사슴이 유입된 시기는 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당시 주민 4명이 꽃사슴 5마리, 엘크 10마리를 구입해 방목한 것이 시작이다. 영광군은 현재 안마도에 있는 사슴을 적게는 200마리, 많게는 500마리 정도로 보고 있다. 주민들은 2015년부터 사슴 떼 포획을 영광군에 호소했다. 사슴은 무게가 최대 100kg(뿔 5kg)까지 나가고 움직임도 빠르기 때문에 전문 수렵인이 총기를 이용해 잡아야 한다.

사슴 떼로 인한 분쟁까지 일어났다. 영광군에 따르면 얼마 전 한 남성이 “2000년대 중반 돈을 주고 사슴을 샀는데 주민들이 목장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주민들은 “10년 넘게 사슴이 입힌 농작물 피해를 보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 섬마다 야생동물 증가로 몸살

인천 옹진군 굴업도 주민들도 사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굴업도 사슴은 10년 전 목장에서 키우던 것이 탈출해 번식하면서 약 100마리에 이른다. 한 주민은 “사슴 주인이 소유권을 포기해 포획이 이뤄지고 있지만 좀처럼 줄지 않아 골칫거리”라고 말했다. 전남 완도군 노화읍 죽굴도는 뭍에서 온 토끼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이재언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연구원(65)은 “육지와 가까운 섬들은 서식지 파괴로 헤엄쳐 온 멧돼지가 극성”이라고 했다.

전국의 섬들이 사육과 관광 목적으로 들여온 사슴 토끼 같은 동물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생태계를 무차별로 파괴하지만 주인 있는 가축인 경우가 많아 포획이 쉽지 않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07년부터 10년간 섬 23곳에서 염소 2840마리를 잡았다. 올해는 섬 7곳에서 포획 작업을 이어간다. 공단은 지난해 전남 여수시 금오도에서 사슴 10마리를, 2009년 전남 진도군 불무도에서 토끼 떼를 포획하기도 했다.

영광=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사슴#토끼#농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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