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 경찰-유족에게서 23억 배상 판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4일 22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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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7번 방의 선물'(2012년)의 실제 주인공 정원섭 목사(82)는 1972년 9월 27일을 잊지 못한다. 그날 춘천경찰서 역전파출소장의 딸 A 양은 성폭행을 당하고 목 졸려 숨진 채로 발견됐다. 사회적 파장이 일자 내무부 장관은 10월 10일까지 범인을 검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 직후 엄혹한 사회 분위기가 돌던 터였다. 그렇게 잡혀온 30여 명의 용의자 중에는 정 씨도 있었다.

정 씨는 단지 A 양이 자주 드나들던 만화가게의 주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정 씨를 범인으로 몰아세웠다. 정 씨가 운영하는 만화가게 여종업원들에게 가혹행위를 해 정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허위 진술을 받아냈다. 또 정 씨를 고문해 결국 자백을 받아냈다.

이듬해 3월 1심 법원은 정 씨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하고 그해 11월 대법원도 정 씨의 유죄를 확정했다. 정 씨의 억울한 옥살이는 1987년까지 15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출소한 뒤 신학교를 졸업해 목사가 된 정 씨는 명예회복을 갈망했다. 변호사들과 함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동아일보도 정 씨의 누명을 벗는 일에 힘을 보냈다. 2001년 정 씨와 변호인단의 제보를 받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증인들과 수사 경찰관 등을 만나 취재한 내용을 10여 차례 동아일보가 심층 보도했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재심 권고를 내렸고, 재심을 청구한 정 씨는 2011년 무죄 판결을 확정 받았다.

2013년 정 씨는 국가 등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26억 원의 배상 판결도 받았지만 대법원이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의 손해배상 제기 시효를 형사보상 확정일로부터 6개월로 제한하면서 배상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됐다. 이에 정 씨는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부장판사 임태혁)는 정 목사와 가족들이 사건을 맡았던 경찰관과 기소검사, 1심 재판장 및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진모 씨 등 경찰관 3명과 그 유족들이 23억88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경찰 수사과정에서 나타난 수사경찰관들의 행위는 위법적인 고의 또는 중과실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정 씨와 그 가족이 입게 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재판에서도 소멸시효기간 완성을 근거로 국가에 대한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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