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후 고온다습한 날씨가 원인
1만여 가구 농경지 2만ha 피해
고흥군 등 벼매입-재해보험 건의
이낙연 전남도지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17일 전남 고흥군 고흥만간척지에서 박병종 군수(왼쪽 세 번째)로부터 심각한 벼 수발아 피해 상황을 전해 듣고 있다. 고흥군은 수발아 피해가 나타난 벼 75%가 밥쌀용으로 부적합해 별도로 매입 관리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고흥군 제공
“쌀 구실 못하는 나락은 난생처음입니다.”
4년째 풍년이지만 쌀값 하락 등으로 농민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설상가상 전남지역 농가 1만여 가구가 벼 수발아 피해를 입어 망연자실하고 있다.
전남도는 베지 않은 이삭에서 싹이 트는 벼 수발아 피해를 입은 농경지가 2만 ha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19일 밝혔다. 피해 신고가 일시 폭주해 전산 작업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발아 현상은 나락이 익을 때 잦은 비와 고온현상이 지속되면 발생한다. 수발아 현상이 나타난 벼는 수확량이 떨어지는 데다 식용으로 사용하기 힘들다.
벼에서 싹이 트는 수발아 피해는 올 추석 이후 고온다습한 기후가 지속되면서 나타났다. 농민회 제공 올가을 잦은 비로 벼 수발아 현상은 전남지역 14개 시군에서 나타났다. 특히 고흥 함평 영광 영암 지역의 피해가 심각해 시름이 커지고 있다. 고흥은 고흥만 간척지 농가 3140곳의 농경지 5800ha에서 벼 수발아 피해를 입었다. 고흥군은 수발아 현상이 밥맛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신동진, 새일미 품종에서 주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농민 장추남 씨(63·고흥군 풍양면)는 “추석 이후부터 고온다습한 날씨가 지속돼 벼가 쌀 구실을 할 수 없는 수발아 현상이 일어났다”며 “40년 쌀농사를 지었지만 이런 자연재해로 벼가 제구실을 못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속이 타들어 간다”고 했다. 장 씨는 또 “수발아 벼는 가공이나 소비자 판매가 어려운 만큼 정부 차원의 수매 이외에 해결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영광은 3300농가 4000ha, 영암은 1280농가 3000ha가 벼 수발아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했다. 전북 부안군과 정읍시 농민들도 “농경지 2000ha에서 벼 수발아 현상이 발생했다”고 호소하고 있다.
농민들은 수발아 피해로 벼 수확량이 30∼50% 감소한 데다 판매까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피해가 커지고 있지만 피해 농민들은 농업재해대책법에 따라 농가당 지원비 88만 원과 농약 비용 22만 원(9917m² 기준)을 받을 수 있다. 전남도의 한 관계자는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농가는 평균 ha당 80여만 원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남지역 농경지 16만6444ha 중 7만5462ha(45%)는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돼 있다. 하지만 농민들은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했더라도 보상 적용이 까다롭다고 지적하고 있다.
고흥군 등은 국회와 농림축산식품부에 수발아 벼 전량 매입과 농작물재해보험 피해 100% 산정 등을 건의했다. 고흥군은 “수발아 현상이 나타난 벼 75%가 밥쌀용으로 부적합해 정상적인 벼가 섞이지 않도록 별도 매입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농식품부는 벼 수발아 피해가 급증함에 따라 수매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는 전남도 등에 벼 수발아 피해 현황과 매입 수량 파악 등을 요청했다.
전남 지역은 4년째 풍년이지만 공공비축미 수매량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전남 지역 쌀 생산량은 2013년 82만3000t, 2014년 80만9000t, 지난해 86만6000t, 올해 84만8000t(예상)으로 풍년이었다. 하지만 공공비축미 수매량은 2013년 13만1938t, 2014년 13만204t, 지난해 12만4385t, 올해 12만2693t으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이런 매입 감소는 그동안 경기, 충청 등에서 일반 농협 판매를 선호했으나 쌀값이 하락하자 모두 공공비축미로 많이 판매해 전남 지역 할당량이 줄어들면서 발생했다. 공공비축미 전국 매입량은 해마다 36만∼37만 t을 유지하고 있다. 농민들은 “80kg들이 쌀 가격이 13만4000원대로 30년 전 수준”이라며 “정부가 공공비축미 매입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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