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집창촌,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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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촌’ 주변 성매매업소 등 매입… 갤러리로 꾸며 60년만에 일반 공개
기획전시-쪽방촌 체험행사 등 열어

전북 전주시의 대표적 집창촌인 서노송동 선미촌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선미촌 빈집에 '눈동자 넓이의 구멍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주제로 설치미술작품을 전시 중인 작가 소보람 씨(왼쪽 모자 쓴 사람)가 5일 김승수 전주시장(오른쪽)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북 전주시 제공
전북 전주시의 대표적 집창촌인 서노송동 선미촌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선미촌 빈집에 '눈동자 넓이의 구멍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주제로 설치미술작품을 전시 중인 작가 소보람 씨(왼쪽 모자 쓴 사람)가 5일 김승수 전주시장(오른쪽)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북 전주시 제공
 전북 전주시의 대표적 성매매 업소 집결지인 완산구 서노송동 ‘선미촌’의 문이 60여 년 만에 일반 시민에게 열렸다. 전주시가 선미촌 내 빈집을 매입해 ‘갤러리’로 꾸며 일반에 공개한 것이다. 집창촌을 문화 재생을 통해 열린 공간으로 바꾸기로 하고 사업에 착수한 지 10개월 만에 나온 첫 번째 결실이다. 전주시는 성매매 집결지를 인권과 문화·예술 거점 공간으로 점차 기능을 전환하기 위해 예산을 들여 빈집과 토지를 매입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9일까지 ‘눈동자 넓이의 구멍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주제로 한 설치미술가 소보람 씨의 작품 전시회가 열린다. 작품은 작가가 버려진 땅 혹은 방치된 장소에 흩어진 고유한 흔적을 탐색하고 드로잉한 것들로 전시됐다. 성매매 집결지 한가운데 자리한 이 빈집에는 수많은 성매매 여성이 거쳐 갔을 법한 한 평 남짓한 쪽방 7개가 남아 있었다. 쪽방에는 누군가 사용했을 인조 속눈썹과 휴지조각 등이 조그만 확대경 150개 안에 담겨 있다. 쪽방 문은 뜯긴 채였고 부서진 욕조가 그대로 놓여 있기도 했다. 쪽방 건물 사이에는 작은 나무계단이 설치돼 방들을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소 작가는 “도시 속 몇몇 장소는 역사적 의미와 상관없이 경제적 이유로 비워졌다”면서 “불편한 기억,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을 시각적, 심리적으로 탐색하려 했다”고 말했다. 전주시는 이번 설치미술 전시회에 이어 연말까지 예술가들의 선미촌 내 공간에 대한 기록탐색과 기획전시, 쪽방촌 체험행사를 열 계획이다.

 선미촌 문화재생사업은 국내 성매매 집결지 정비가 주로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로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행정과 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문화예술을 통해 열린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사업이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속칭 ‘뚝너머’(철둑 너머)로 불리던 선미촌(약 2만2700m²)은 1950년부터 당시 전주역(현 전주시청) 주변에 생기기 시작해 1970, 80년대에는 400명이 넘는 성매매 여성이 있던 전북 최대 집창촌이었다. 바로 옆에 주거지와 학교, 시청 등 관청이 밀집해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으로 단속이 강화되면서 수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49개 업소에 80여 명의 여성이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법 시행 이후 여성단체가 입주하고 전주시도 공원 조성, 주차장 건립 등을 검토했지만 성매매 업주와 종사자들의 강한 반발과 예산 부족으로 사업이 삐걱거려 왔다.

 전주시는 지난해 말부터 빈집과 성매매 업소 등 4필지의 토지(628m²)와 건물을 매입해 인권과 문화·예술 거점 공간으로 그 기능을 바꿔 가고 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앞으로도 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강제 철거보다는 예술 문화를 통해 선미촌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꾀하려 한다”고 말했다.

 쪽방 형태의 여인숙 건물 일부를 보존해 성매매 업소의 기억 공간으로 남겨두는 한편 일부는 지역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정주형 공간으로 점차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 2017∼2019년 2단계 확장 사업과 3단계 정주형 예술창작 공간화 작업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선미촌을 인권과 문화의 광장으로 탈바꿈시킬 방침이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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