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10시 반 전남의 한 섬마을 선창가 식당.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철저히 가린 박모 씨(49) 등 여교사 성폭행 사건의 피고인 3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장검증이 시작됐다. 경찰관과 교도관 20여 명이 주변을 통제했지만 주민과 관광객 50여 명이 몰려들었다. 일부 주민은 박 씨 등을 향해 ‘저 XXX, 사형에 처해야 한다’, ‘우리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박 씨 등 3명은 재판을 맡고 있는 엄상섭 광주지법 목포지원 형사합의1부장 등 판사 2명과 검사 2명, 변호인 등이 보는 가운데 식당 안에서 범행을 재현했다. 현장검증은 2차 피해를 예방한다는 취지에서 비공개로 진행됐다.
박 씨 등은 5월 21일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 반까지 초등학교 관사에서 여교사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술에 취한 여교사를 차에 태워 식당에서 2㎞ 떨어진 초등학교 관사로 끌고 가는 모습 등을 재연했다. 이후 도로, 관사로 이동하며 현장검증을 이어갔다. 재판부는 2시간 동안 진행한 현장검증에서 범행장소나 시간은 물론 이동 거리, 폐쇄회로(CC) TV 등을 확인했다.
현장검증에서 주요 쟁점은 박 씨 등 3명의 공모(共謀) 여부였다. 검찰은 이들이 식당과 관사를 14차례 오가는 등 공모 정황이 드러났다고 보는 반면 박 씨 등의 변호인들은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다음달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멀찍이 떨어져 현장검증을 지켜본 주민들은 “뭍에 사는 향우들이 고향이 ‘OO도’라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쉬쉬하는 처지”라고 혀를 찼다. 이곳 출신 주민들은 사건 발생 두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향이 없는 사람들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모 씨(47)는 “박 씨 등이 죗값을 치르고 고향으로 돌아와도 얼굴을 마주칠까봐 겁이 난다”며 “큰 상처를 남긴 이번 사건은 한 세대 정도는 흘러야 아물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섬마을 주민들은 미역을 채취하는 등 바다를 생계의 터전으로 삼고 있거나, 관광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8월 휴가철 성수기이지만 관광객이 지난해에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목포=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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