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국빈이 오면 맨 처음 예를 표하는 곳이 국립현충원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국가를 대표하는 의전시설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국립서울현충원을 대표적인 의전시설로 정하고 있다.
국가의 의전은 나라의 정체성과 국민의 정신을 대표하는 것으로, 이를 행하는 데 한 치의 착오도 있어서는 안 되며 시설의 설치와 의전의 시행에는 절차와 의식을 사리에 맞춰야 한다. 국가의 의전을 잘못할 경우, 국민 전체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국가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국인 의전은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으로 끝날 수 있으나 다른 나라와의 의전은 외교 문제로 비화돼 심하면 외교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광복 후 70년이 지나는 동안 시대별로 전쟁의 수행, 경제 성장, 민주화를 거치면서 앞뒤 돌아볼 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 이제 경제적으로 세계의 선두 그룹에 들어선 우리가 국제적 리더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글로벌한 국가 이미지를 구축해야 한다.
국제규범적 이미지의 최선두에 합리적인 국가 의전이 자리한다. 이에 제61회 현충일을 맞아 우리의 국립현충원은 선후가 맞고 사리에 맞게 설치,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하면서 건국 공로의 1순위인 순국선열에 대한 예우 시설을 먼저 만드는 것이 당연한 순리였으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6·25전쟁이 일어났고, 수많은 군인이 전사를 하게 되니 국가는 우선 이들을 묻을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첫째 당면 과제가 됐다. 따라서 서울 동작동 공동묘지에 전사자를 묻기 시작하였고, 전쟁에서 희생된 많은 군인이 공동묘지에 묻히게 되니 이름하여 동작동 국군묘지가 되었다. 그래서 자연히 이의 관리는 국방부가 맡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이 묘지에 대한 예우를 높여야 할 필요성이 생겨 국립묘지를 국립현충원으로 높여 부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독립운동가 중 생존한 사람들의 주장으로 애국지사의 묘역도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 큰 예절적, 의전적 모순이 발생하였다. 지금까지 누구도 이 모순에 대해 언급한 사람이 없다.
대한민국의 의전에서 최고의 예우 대상은 정신적으로는 순국선열이고, 현실적으로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현실 문제이기 때문에 행정자치부에서 비교적 선후를 가려 잘 이행하고 있다. 문제는 정신적 예우 대상인 순국선열인데, 순국선열을 국립현충원과 연결해 보면 그 모순점이 뚜렷해진다.
국가의 최고 의전시설인 국립현충원에 국가 최고 예우 대상인 순국선열의 묘역이 없다. 국가보훈기본법은 ‘희생과 공헌의 정도에 상응하는 예우와 지원을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국립현충원에 순국선열의 묘역이 없다면 큰 모순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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