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이 만나 사과하라” 피해자 요구에…사연만 듣고 간 옥시 대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0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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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최대 가해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처음으로 피해자들을 단체로 만나 잘못을 사과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옥시가 구체적인 보상방안 등을 마련하지 않는 등 사과의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며 반발했다.

옥시는 20일 오후 대전 유성구 아드리아 호텔에서 ‘제1회 옥시레킷벤키지 사과의 장(場)’을 열어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뒤 보상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 한국법인 대표를 포함한 옥시 경영진과 ‘옥시싹싹 NEW 가습기 당번’ 등 옥시 살균제 제품으로 폐 손상 등의 피해를 입은 1, 2등급 피해자 및 가족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옥시 측은 이날 행사를 비공개로 진행했다. 사프달 대표는 회의실 정문이 아닌 주방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입장하는 등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행사는 옥시 측이 피해자들의 개별 사연을 듣고 이에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2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 당시 “일일이 사과하라”는 피해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참석자들은 피해자와 가족들이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곽윤희 씨(36·여)는 “피해자들이 절절한 사연을 얘기할 때마다 모두 눈물을 흘려 행사장은 울음바다였다”며 “옥시 측이 지난 번 기자회견 때와 비슷한 답변만 내놓아 답답했지만 개별적으로 사과한 것은 의미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옥시 측은 피해자들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구체적 보상방안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았다. 일부 피해자가 목소리를 높이는 바람에 행사가 잠시 중단되는 상황도 발생했다. 최승운 가습기살균제피해자가족연대 대표는 “진심 어린 사과와 보상계획이 나올 줄 알았지만 사연을 듣는 것뿐이었다”면서도 “옥시 측이 2, 3주 내로 서울에서 다시 모임을 잡아 현실적인 보상안을 내놓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옥시가 구체적인 준비도 없이 시간을 끈다며 강하게 비판하는 피해자들도 많았다. 본인과 딸이 1등급 피해자인 이미옥 씨(40·여)는 “5년, 10년 동안 고통을 받고 있는 분들도 적지 않다”며 “행동 없이 말로만 사과하는 옥시에게서 진정성을 느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옥시 측은 “오늘 행사가 전부가 아니다. 우선 1, 2등급 피해자를 만난 것”이라며 “앞으로 피해자와 가족들을 일일이 찾아가 사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전=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한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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