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소송위임장에 ‘위조 증표’ 붙인 변호사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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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몰래변론 노려 수임사건 축소 의도… 고소인 여러명인 기획소송 늘면서
1건에만 원본, 나머지엔 복사본… 법원, 40대 변호사에 첫 벌금 선고

법원이 소송 위임장에 붙이는 ‘경유증표’를 위조한 변호사에게 처음으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탈세나 ‘몰래 변론’을 위해 일부 변호사가 자행해 온 ‘꼼수’에 법원이 철퇴를 내린 것이다.

의정부지법 형사합의2부(부장판사 은택)는 저작권법 위반 사건의 고소 사건을 대리하면서 복사한 경유증표를 붙인 위임장 30장을 검찰에 제출한 혐의(사문서 위조 등)로 기소된 변호사 황모 씨(48)에 대한 항소심에서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고 17일 밝혔다.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고소 위임장마다 경유증표 원본을 부착해야 하는데도 이를 복사해 사용한 행위는 공공의 신용을 해칠 수 있는 문서 사본을 만드는 것으로 사문서 위조죄 및 사문서 행사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황 씨는 2014년 12월 “저작권을 갖고 있는 동영상이 포털사이트에 유포돼 권리가 침해됐다”는 김모 씨의 상담을 받고 저작권법 위반 고소 사건을 맡게 됐다. 황 씨는 2015년 3월 저작권을 침해한 누리꾼 30명에 대한 고소 위임장을 작성한 뒤 컬러 복사한 서울지방변호사회의 경유증표를 붙여 검찰에 제출했다.

변호사법 29조는 법률 사무에 관한 변호인 선임서 또는 위임장 등을 공공기관에 제출할 때 사전에 소속 지방변호사회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절차를 ‘경유’라고 한다. 경유증표는 정상적으로 절차를 거쳤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변호사는 사건 접수 7일 안에 지방변호사회의 경유 업무 프로그램에 사건 내용과 증표 번호를 전산 입력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변호사 업계에서는 비용 지출이 늘어나고 수임 규모가 공개돼 법조윤리회나 관할 세무서에 통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경유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고소·고발 기획 소송이 늘면서 당사자가 여러 명인 사건의 경우 1건만 경유증표를 부착하고 나머지에는 복사한 경유증표를 붙이는 사례가 적발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경유의무 위반이 단순히 경유 회비 미납이나 경유증표 부정 사용 차원을 넘어 탈세나 ‘몰래 변론’의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변호사 단체들도 불법 행위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황 씨에 대한 징계 청구 신청을 받아 현재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2월 경찰청과 서울지방경찰청, 서울시내 경찰서 31곳에 “경유증표 원본이 아닌 사본을 부착할 경우 서울지방변호사회로 통보해 달라”는 협조 공문을 보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탈세#변론#소송위임장#위조 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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