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기술유출 수사 왜 오래 걸리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힘센엔진’ 도면유출 8개월째 수사… 구속영장 신청 피의자 한명도 없어
“경찰 수사력 한계 아니냐” 지적도

현대중공업의 ‘힘센엔진’ 도면 유출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8개월째 수사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첨단 기술 유출 사건을 다루는 경찰 수사력에 한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5일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8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4월 중공업계로부터 “수년 전부터 힘센엔진의 일부 도면이 유출돼 부산과 경남의 선박 부품업체에서 복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후 자체 조사를 한 결과 해당 제보가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초기부터 지지부진했다.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내는 데까지 3개월이 걸렸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엔진의 핵심 부품인 실린더헤드를 만드는 업체 2곳과 이를 국내외에 판매한 업체 한 곳에서 힘센엔진 일부 도면과 복제품, 거래명세서, 선급증서 등을 확보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복잡한 기술로 만들어진 제품의 수사여서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했다.

압수품을 분석하는 데도 더뎠다. 경찰은 압수수색 후 2명의 인력을 충원해 모두 4명을 이 사건에 투입했지만 지난달에야 압수품 분석을 마쳤다.

경찰은 “압수한 업체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이 너무 많아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수사에 매진해왔다”며 “많은 파일 중 기술 유출 범죄와 관련된 내용을 분류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입건되는 사람은 늘고 있지만 아직 이 사건과 관련해 구속 영장이 신청된 피의자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통 복잡한 지능 사건은 핵심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한 상태에서 자백 등을 받아 수사에 탄력이 붙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번 수사는 이마저도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제품 모양이 매우 유사하더라도 유출된 기술로 만든 제품인지를 단정하기 어렵다. 여러 전문가에게 자문하고 다시 법률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놨다. 경찰은 이달 중 사건을 마무리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순수 국산 기술로 만든 최초의 선박용 엔진인 힘센엔진은 현대중공업이 약 10년간 400억 원가량을 투입해 2000년 개발에 성공했다. 2004년에는 지식경제부로부터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됐다. 국내 대기업이 세계 선박용 엔진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힘센엔진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독일 등 해외 업체의 라이선스를 받아 만든 것이다.

한 중공업계 관계자는 “경찰이 국익(國益)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수사에 전력을 다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본보는 힘센기술 엔진 도면이 국내뿐 아니라 중국에 넘어간 사실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