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찾아서… 한손엔 빵, 한손엔 침낭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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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상담원들과 동행해보니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직접 찾아가 상담하는 ‘아웃리치 상담원’들이 28일 오후 8시경 노숙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이날 서울역 응급대피소가 폐쇄돼 노숙인들이 본격적인 야외 생활을 시작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직접 찾아가 상담하는 ‘아웃리치 상담원’들이 28일 오후 8시경 노숙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이날 서울역 응급대피소가 폐쇄돼 노숙인들이 본격적인 야외 생활을 시작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오늘부터 응급대피소가 잠시 문을 닫습니다. 개인 후원 침낭이 센터에 100개 정도 있으니 받아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28일 오후 7시 30분 서울역 앞 컨테이너 가건물. 김민수 씨(35)가 목소리를 높여 동료들에게 설명했다. 이곳은 서울시의 노숙인 지원 기관인 ‘다시서기 지원센터’. 김 씨와 동료들은 이곳에서 일하는 ‘아웃리치(out-reach)’ 상담원이다. 아웃리치 상담원은 노숙인이나 가출 청소년 등 복지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 의료와 임시 거주, 자활 서비스 등을 안내한다.

여느 때와 달리 이날 다시서기센터 상담원들은 밤이 될수록 더욱 분주했다. 응급대피소가 이날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응급대피소는 혹한기와 혹서기에만 운영된다. 폭염이나 한파 때 노숙인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이다. 날씨가 풀리면서 응급대피소도 문을 닫은 것이다. 이는 곧 노숙인들이 하루 종일 거리에서 지내야 한다는 의미다.

노란 점퍼를 입은 아웃리치 상담원 11명은 저녁 내내 하얀 비닐봉투에 빵과 물티슈를 나눠 담았다. 김 씨는 “날씨가 풀리면 아무래도 후원 등 사회적 관심이 줄어든다”며 “이럴 때일수록 더 긴장하고 노숙인에게 적극적으로 자활 서비스를 안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후 7시 50분 상담원들은 센터를 나와 서울역 광장 곳곳으로 향했다. 광장 한쪽에만 노숙인 20여 명이 있었다. 서울역과 서울스퀘어 사이 중앙지하도에도 50여 명이 눈에 띄었다. 평소 같으면 추위를 피해 응급대피소를 찾았지만 이제 갈 곳이 없어진 것이다. 상담원이 다가서자 노숙인들도 대뜸 “대피소가 끝난 거냐”고 물었다. 상담원 최세명 씨(37)가 빵과 침낭을 건네며 “아주 닫은 건 아니고 임시로 닫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명을 위협하던 추위는 끝났지만 상담원들은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거리를 헤매는 대신 자활을 통해 다시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상담원으로 일한 이애신 씨(68·여)는 지하도에서 만난 A 씨(55)를 붙잡고 “아직 젊으니 다시 일을 하라”고 권유했다. 이 씨는 수첩에 A 씨의 신상과 상태, 대화 내용 등을 꼼꼼하게 적었다. 모든 아웃리치 상담원들은 이렇게 노숙인의 상태를 기록해 관리시스템에 입력한다. 노숙인에게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정보를 확인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응급대피소의 상시 운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서울역 파출소 앞 지하보도에 마련된 노숙인 응급대피소는 2012년 서울역 대합실에서 쫓겨난 노숙인을 위해 임시로 지어진 시설이다. 매년 혹서기 혹한기에만 운영하다 지난해 처음으로 가을에도 문을 열었다. 그러나 시설 개보수 등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면서 상시 운영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서울시 관계자는 “5월 시작되는 계절별 노숙인 실태 조사를 통해 적절한 자립 지원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노숙인#서울역#상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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