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다 지나갈 일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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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무한도전’ 화면 캡처.
MBC ‘무한도전’ 화면 캡처.
최지연 오피니언팀 기자
최지연 오피니언팀 기자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런 고민들도 다 별것 아닌 게 되겠지….’

서랍을 정리하다 발견한 학창 시절 일기장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더군요. 입시에 대한 압박감, 친한 친구와의 말다툼…. 당시 고민이라 하면 이런 사소한 것들이었지요. 10년이 지난 지금, 고민의 내용은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걱정들은 바람대로 정말 ‘별것 아닌’ 일이 됐지요. 당시엔 꽤나 심각했던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오늘을 사는 10대들도 예전의 저와 비슷해 보입니다. 지난 한 주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 ‘네이트 판 톡톡’에 ‘10대 이야기 베스트 톡’으로 꼽힌 게시 글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여기 고민 말해 봐. 반 년 뒤에 답글 달아 줄게’라는 제목이었습니다.

‘내가 답글 달았을 때는 고민이 싹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때 댓글 보면서 ‘맞아 이런 고민이 있었지ㅋㅋㅋ 쓸데없는 고민이었네’ 하고 웃어넘기길 바라면서! 댓글로 고민 말해 봐 여름방학쯤에 답글 달아 줄게.’

글쓴이는 자신의 고민도 덧붙입니다. ‘난 새 학기 친구랑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이고 내신 관리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돼. 너네는??’

기다렸다는 듯 주렁주렁 댓글이 달렸습니다. ‘반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고 지금 상설 동아리 지원서 넣는 거 붙었으면 좋겠다. 중간고사 잘 보고’, ‘같은 반에 좋아하는 애 있는데 6개월 뒤엔 잘 만날 수 있을까’, ‘독서실에서 독학하는 재수생인데 사람을 못 만나서 너무 외롭다. 9개월 뒤에는 친구들이랑 다 같이 웃고 싶다!!’

이 글엔 댓글이 3700건 넘게 달렸습니다. 작성자가 댓글을 6개월 뒤에 달아 주기로 한 만큼, 댓글을 단 사람들끼리 대화를 주고받았지요. ‘사람들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안 받았으면 좋겠어’, ‘동아리는 꼭 붙길 바라’, ‘중간고사 파이팅!’

이 시기 학생들로부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고민들, 그에 대한 조언들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10대를 지나온 어른들이 이들의 고민을 사소하게만 치부한다면, 그야말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꼴’일 겁니다. 친구와의 관계가, 자꾸만 떨어지는 내신 등급이, 좋아하는 학우의 마음을 얻고 싶은 그 간절함이 지금 10대들에겐 너무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죠. 그 시절 저 또한 그랬듯이 말입니다.

고민은 많지만 막상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요즘, 온라인은 고민 상담 창구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차마 말하기 부끄러운 그런 사소한 고민들을 익명의 공간에선 편하게 얘기할 수 있죠. 상담 전용 페이스북 페이지, 카카오톡 익명 상담 모임방 등이 활성화되는 이유입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딱히 해결책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고 위로받고 싶을 뿐입니다. ‘다 지나갈 일들’이라며.

누리꾼들의 고민을 읽다 보니 최근 방영된 MBC 무한도전 ‘나쁜 기억 지우개’ 편이 떠올랐습니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서울 노량진과 광화문 등지에 ‘나쁜 기억을 지워 드립니다’라고 쓰인 푸른 천막을 쳐 놓고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 그곳에서 잊고 싶은 기억을 종이에 쓴 다음 지우개로 지워 보는 시간을 가졌죠. 천막을 찾은 사람들 대부분은 ‘지우고 싶은 기억이 뭐냐’라고 물었을 때 선뜻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현재의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오랜 취업 준비로 인한 불안감,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등을 꺼냈죠. 나쁜 기억은 다시 떠올리기 싫어 기억의 저편에 묻어 두었기 때문에, 곧장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사실 지금의 고민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면, 그 일이 더 나쁘게 진행돼 훗날 안 좋은 기억으로 남겨질 수 있습니다. 방송이 나간 뒤 한동안 SNS에선 ‘내가 지우고 싶은 기억은 무엇인가’는 물론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힘든가’를 돌아보는 글들이 여럿 올라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도 모른 채 살아가던 이들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이들을 보며 공감하고, 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거죠.

여하튼 지금 안고 있는 고민들, 너무 심각해하지 않길 바랍니다. 먼 훗날엔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넘길 일이겠죠. 이 또한 다 지나갑니다.

최지연 오피니언팀 기자 lima@donga.com
#무한도전#조언#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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