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기차 소리, 별 그리고 고라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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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이때쯤이면 눈이 떠진다. 그럴 나이가 되었다. 최근 1, 2년 사이 기계의 힘을 빌려 잠을 깨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오고부터는 뒤척이는 나를 침대 밖으로 불러내는 아주 낭만적인 소리가 있다. 철마의 아침 인사! 아침 6시 9분 김천역을 출발한 부산행 무궁화 열차가 그것이다. 역이 코앞이니 출발 1∼2분 후면 그 정겨운 인사는 내 침대까지 도달한다. 처음 이 소리는 다소 의아했다. 아주 낮고 빠르면서 일정한 리듬. ‘도대체 이 소리는 뭘까’ 하고 몇 날 동안 궁금했다. 그 정체불명의 실체가 기차 소리라는 걸 알고는 지극히 단순한 이 소리가 이토록 정겨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덜커덩덜커덩. 간혹 주말에 경험하는 다른 크기와 리듬의 변주는 새마을호 열차다. 확인한 적은 없지만 둘은 분명히 다르다. 또 사무실에서 간혹 듣게 되는 흡사 제트기처럼 건조한 KTX 소리와는 비교할 일이 아니다.

어김없는 아침 인사를 받았으니 이제 냉수 한 잔 들이켜고 집을 나선다. 이주 초기에는 도로 건너 황산(172m)이나 철길 건너 까치산(279m)을 한 바퀴 돌았는데 밤이 길어지면서 어두운 산길보다는 잘 정비되어 안전한 감천 둑길을 걷기 시작했다. 구미에서 낙동강에 합류하는 감천은 듬성듬성 모래톱이 보이는 제법 규모 있는 하천인데 강둑을 따라 펼쳐진 들도 꽤 널찍하다. 이 길을 걷는 재미는 단연 별 구경이다. 동트기 직전 짙푸른 하늘이 비좁다고 아우성치는 별들! 맑은 하늘에 쏟아지듯 반짝이는 별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면 그리 상쾌할 수가 없다. 흐린 날씨나 밤이 짧은 하지(夏至) 전후 수개월은 별들을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다음 달부터는 아침 산책 대신 수영을 해볼까 한다.

승용차로 15분 거리에 50m 레인 10개와 다이빙 풀까지 갖춘 국제 규격 김천시립실내수영장이 있다. 공단 내 소장파 20여 명은 이주 초기부터 ‘마린보이스’라는 동호회를 만들어 매일 물살을 가르는데, 생전 제대로 격식을 갖추어 수영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 오래 망설이다 용기를 냈다. 혁신도시 이주 기관 직원들은 50% 세일! 레슨비 포함 월 2만5000원이니 사실 거저다. 김천이라 15분이지, 7km 거리니 서울이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또 다음 달부터 사내 달리기모임에서 일주일에 한 번 퇴근 후 5∼6km를 달린다니 일주일에 수영 두 번, 달리기 한 번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한 시간여 산책, 샤워, 가벼운 아침 식사를 마치면 8시 20분 전후. 집을 나서 15분 후면 자리에 앉아 30년 가까이 반복되는, 그런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산책길에 만난 동그란 눈의 고라니가 자꾸 떠올라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그 녀석이 더 놀랐을까, 아니면 내가 더 놀랐을까. 또 만날 수 있겠지. 그때는 서로 덜 놀라려나?
※필자(54세)는 서울에서 공무원, 외국 회사 임원으로 일하다가 경북 김천으로 내려가 대한법률구조공단 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박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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