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의사를 밝힌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30일 마지막으로 지휘한 곡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었다.
정 감독은 이날 오후 9시 10분경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합창’의 피날레와 함께 서울시향의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 2300여 명은 거장의 지휘를 서울시향에선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15분간 기립박수를 보냈다. 관객들의 열띤 앙코르 요청에 정 감독은 합창의 마지막 피날레를 다시 연주했다.
공연 뒤 정 감독은 담담한 표정으로 단원 80여 명의 등을 두드리며 일일이 악수를 건넸다. 순간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내는 연주자들도 보였다. 앞서 단원들은 공연 직전 박현정 전 시향 대표를 비판하는 내용의 호소문을 관객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정 감독은 공연장을 나서면서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 일절 대답하지 않고 “연주, 오늘 너무 잘했어”라고만 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해피 뉴 이어”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라고 했다. 이렇게 시향의 정명훈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날 두 딸과 함께 온 관객 김모 씨는 “매년 송년 공연을 보러 오는데 갑자기 사퇴한다고 해서 너무 아쉽다”며 “정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연주자인 만큼 꼭 다시 돌아와서 연주를 들려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2005년 취임한 정 감독은 재임 10년간 시향의 음악적 수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여건에 비해 과한 처우 문제와 박 전 대표와의 갈등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정 감독이 음악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자세나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그는 29일 단원들에게 보낸 사퇴 편지에서 ‘문명사회에서 용인되는 수준을 넘는 박해가 일어나는 건 한국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 ‘여태껏 살아왔던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일’ 등의 표현을 쓰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그의 연주는 국보급이고 그런 지휘자가 대한민국 국민인 게 자랑스럽지만 음악 이전에 인간적 겸손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재계약 여부와 관계없이 내년 9회의 시향 공연을 지휘하기로 한 약속을 깬 것도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정 감독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지평은 29일 보도자료를 내고 “정 감독의 부인은 허위사실을 날조하도록 사주한 게 아니라 피해자인 직원들의 피해 구제를 돕기 위해 조언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박 전 대표는 30일 기자들에게 ‘인간·음악가·한국인 정명훈 선생님께’라는 제목으로 보낸 e메일에서 “정 감독이 서울시향 단원 여러분이 지난 10년 동안 이룩한 업적이 한 사람의 거짓말에 의해 무색하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고 한 것은 저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다시 한 번 인격살인한 것”이라며 “정 감독이 진실이 밝혀지길 원한다고 했으니 10개월 넘게 유럽에 계신 부인 구순열 씨도 귀국해 경찰 조사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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