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경찰청 내부 홈페이지에 ‘내가 경찰청장이라면’이라는 게시판이 개설됐다. 이름 그대로 계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쓴소리’를 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취지만 믿고 글을 올렸다가 징계를 받고 자신의 조직과 법적 다툼까지 벌이는 경찰이 있다.
서울 양천경찰서 신정1지구대 심재황 경위(51)는 지난해 4월 이 게시판에 서울지방경찰청 전 지휘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2011년 경찰이 군용 총기를 영화 소품으로 들여올 수 있도록 수입업자에게 허가를 내준 부분을 비판했다. 3년이 지나도록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자 공론화를 위해 글을 남긴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심 경위의 ‘직언’에 징계로 답했다. 서울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은 특별조사반을 보내 “왜 쓸데없이 글을 올려 조직 기강을 문란하게 하느냐”고 그를 추궁했다. 결국 심 경위는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심 경위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시작했고 재판부는 그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5부는 “표현이 다소 과장된 부분은 있지만 충분히 수긍할 여지가 있고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위한 게시판의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양천경찰서는 즉각 항소했다. 게다가 이례적으로 변호사 수 기준 국내 7위 규모의 대형 로펌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이용욱 서울경찰청 조직법무계장은 “법률지원제도에 따라 변호인을 지원했을 뿐 심 경위 사건에만 그런 건 아니다”며 “변호인 선임 비용 등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쓴소리’를 한 직원 징계를 위해 국민 혈세를 쓰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지휘부의 ‘적극적 대응’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심 경위의 게시글에는 “소통의 공간인 줄 알고 마음 놓고 쓴소리를 하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인가요”라는 동료의 댓글이 올라왔다. 물론 경찰 조직의 특성상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내부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이 같은 태도는 경찰 조직 내 자조와 체념의 문화만 퍼뜨릴 뿐이다.
유원모·사회부 onemore@donga.com
“알려왔습니다”
본지 지난 2015년 11월 10일자 사회면에 “[기자의 눈/유원모]로펌까지 동원해 내부 비판 재갈 물리는 경찰” 제하의 기사에 대해 서울경찰청 조직법무계장은 해당 경찰서의 요청에 따라 소송대리인을 선임했을 뿐이라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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