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도 덜어서 사고파는 20代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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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비용으로 다양한 제품 즐기자”… 화장품-단백질제 小分매매 인기
취업난 등 힘든 경제 여건도 영향… 식약처 “성분 확인 어려워 위험”

인터넷에서 5mL씩 소분(小分)으로 판매되는 향수. 다욧은힘들어 블로그 제공
인터넷에서 5mL씩 소분(小分)으로 판매되는 향수. 다욧은힘들어 블로그 제공
7일 한 인터넷 향수 전문 커뮤니티에 ‘○○향수 소분(조금씩 덜어 판매)해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판매자는 절반 정도 남은 향수 사진을 올렸다. 사진 아래에 한 병(75mL) 값이 21만 원인데 10mL씩 작은 병에 옮겨 2만 원에 팔겠다고 적었다. 남이 쓰다 남긴 향수지만 구매를 원한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향수를 소량으로 사는 직장인 이모 씨(23)는 “뿌리고 싶은 향수는 많은데 병째 살 돈이 없어서 소량으로 구매한다”며 “한 번 뿌리는 양(약 1mL)은 몇천 원에 파니까 쉽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20대를 중심으로 ‘소분(小分) 시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 소분은 작게 나눈다는 뜻이지만 젊은층 사이에선 제품을 잘게 나눠 사고파는 의미로 통한다. 경제력은 부족해도 소비의 즐거움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젊은층이 주로 이용한다. 온라인 물품 거래 사이트인 ‘중고나라’ 카페에선 소분으로 물건을 판매한다는 글이 하루 수십 건씩 올라온다. 커피 원두, 만년필 잉크, 반려견 사료 등 종류도 다양하다.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고급 향수와 화장품이다. 화장품 소분 판매자는 큰 병에 담긴 화장품을 용기에 덜어 판매한다. 또 백화점이나 면세점에서 명품 화장품을 구매하고 받은 샘플도 판다. 딱 한 번 바를 양의 소분 화장품이 거래되기도 한다. 취업준비생 장모 씨(21·여)는 “입사 면접 같은 중요한 날 한 번 바르기 위해 화장품을 소분으로 구매했다”며 “고가 화장품을 살 땐 최대한 샘플을 많이 얻어서 다시 소분 시장에 팔기도 한다”고 말했다.

몸짱을 꿈꾸는 젊은 남성들은 단백질 보충제, 비타민제 등을 소분 시장에서 찾는다. 아르바이트생 임모 씨(26)는 “단백질 보충제 한 통에 10만 원씩 하니까 아르바이트를 해서는 사기 어렵다”며 “남이 질려서 못 먹거나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보충제가 소분 시장에 나오면 구매한다”고 했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집과 자동차처럼 목돈이 드는 재화 대신 고급 화장품이나 향수 같은 ‘작은 사치’가 유행하고 있다. 특히 같은 비용으로 다양한 제품을 즐기려는 젊은층의 소비 욕구 덕분에 소분 시장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엔 취업난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젊은층의 경제 여건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자기표현이 확실하고 꾸미고 싶은 욕구도 훨씬 커졌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작은 사치인 향수, 화장품 등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사회가 희망적인 미래를 보여주지 못하면 젊은 세대가 소분 같은 작은 소비만 꿈꾸다가 큰 꿈을 접어 버릴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소분 시장이 확산되고 있지만 현행법상 명백한 불법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인터넷에서 파는 소분 상품들은 유통기한, 성분, 위생상태 등을 확인할 수 없어 위험하다”며 “소분 거래는 화장품법,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 등에 따라 처벌하지만 온라인 거래 특성상 적발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노덕호 인턴기자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세무회계학과 졸업
#향수#20대#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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