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고위험 투자’ 결과 안밝혀… 원금잠식 위기, 회원은 깜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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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폭탄’ 부실 공제회]‘제2의 저축銀 사태’ 우려

군인·군무원 회원 17만 명에 자산 8조6000억 원을 보유한 군인공제회는 2007년 12월 A사의 자회사 주식 199만 주를 500억 원에 매입했다. ‘2011년 2월부터 2년간 연 8.2%의 이자를 더해 A회사에 매도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2012년 1월 A사가 당기 순손실이 발생하는 등 재무상태가 악화되자 군인공제회는 자회사 주식에 대한 매도청구권을 행사했다. A회사가 “지금은 자금 사정이 좋지 않으니 일부만 우선 상환하겠다”고 하자 군인공제회는 300억 원치만 매도청구권을 행사했다.

문제는 나머지 200억 원어치 주식의 매도청구권 행사를 유보하면서 담보설정 등 우선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 그해 9월 A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일반채권자에 불과했던 군인공제회는 158억 원의 손실을 봤다.

○ 목전에 닥친 원금 잠식 가능성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이런 식으로 군인공제회에서 발생한 손실액은 6028억 원에 이른다. 자산운용 손실이 커지면서 ‘안정기금’ 잔액은 같은 기간 동안 5281억 원에서 1545억 원으로 3분의 1토막이 났다. 안정기금이란 회원들에게 지급할 퇴직급여 원리금을 충당하기 위해 별도로 적립하는 기금이다. 즉 지난해 말 현재 군인공제회 기금 총액 6조6374억 원 중 원금을 제외한 여윳돈이 2.3%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올해 손실액이 2011년(3536억 원 손실)의 절반 수준만 되더라도 당장 내년부터 원금이 잠식될 수 있다.

군인공제회 측은 “지난해 당기순익을 냈고 투자 기법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며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감사원은 2013년 정기감사에서 “군인공제회의 수익성이 악화돼 당기순손실이 계속 발생할 경우 공제회 안정기금만으로는 퇴직급여 원리금을 지급하기 어려울 수 있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공제회들의 자산운용 실적이 좋지 않은 것은 위험을 꼼꼼히 따지지 않고 수익성만 앞세워 투자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제회는 회원들이 급여에서 공제한 일정 금액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만큼 최대한 많은 회원을 모으는 것이 우선 과제다. 그러다 보니 과도하게 높은 이자율을 제시하는 일이 적지 않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자 일부 공제회가 금융상품의 금리(급여이자율)를 4%대로 낮췄지만 1∼2%대인 시중의 예금, 적금보다 여전히 높다.

목표가 높은데도 자산운용의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공제회의 수익률이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역마진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회원들에게 지급하는 돈이 증가하고 있는 공제회의 경우 수천억 원의 당기순손실로 이어진다.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선 다음 해에는 수익성이 높지만 위험성도 큰 빌딩, 자원, 사모펀드(PEF), 헤지펀드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높은 이자율 제시→위험 투자→손실 발생→고위험 투자’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한국교직원공제회는 위험자산 투자 비중을 2008년 52%에서 2013년 71%로 19%포인트 높였다.

○ 재정 부담으로 귀결


공제회의 자산이 부실화될 경우 조합원들이 책임을 지고 손해를 분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군인공제회, 경찰공제회 등 감사원의 감사를 받는 7대 공제회의 경우 관련법에 ‘필요한 경우 정부 보조금 또는 교부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근거 조항이 있다. 자산운용 실패로 인한 공제회의 부실을 국민의 혈세로 메우도록 제도가 설계돼 있는 것이다. 시중 금융상품이 최고 5000만 원까지만 원리금이 보호되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특혜다.

정부 보조금 지급 가능성이 명문화돼 있지 않은 다른 공제회의 경우에도 가입자 수와 지급준비금 규모에 따라 정부 재정이 투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12년 저축은행 사태 때도 표를 의식한 일부 정치인이 국가 재정으로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개인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을 무시했다는 여론의 비판이 거세게 일어 보상안이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정부의 책임이 없더라도 언제든 정치적 논리에 따라 재정이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명재 의원(경북 포항 남-울릉)은 “공제회 부실에 정부 재정이 투입된다면 국가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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