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켜요 착한운전]<6>낮에도 켜면 교통사고 19%↓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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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 전조등은 생명을 지키는 빛… 낮에도 환히 밝히세요”

16일 오전 경북 상주시 청리면 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교육센터에서 실험 참가자 이상녕 씨(69)가 출발선에 서 있는 자동차를 주시하고 있다. 실험 결과 전조등을 켰을 때 보행자가 평균 15m 먼 지점에서 위험을 감지했다. 상주=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16일 오전 경북 상주시 청리면 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교육센터에서 실험 참가자 이상녕 씨(69)가 출발선에 서 있는 자동차를 주시하고 있다. 실험 결과 전조등을 켰을 때 보행자가 평균 15m 먼 지점에서 위험을 감지했다. 상주=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오는 차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전조등을 켠 차량이 더 안전한지 직접 실험에 나선 이상녕 씨(69)의 실험 소감이다. 16일 오전 11시 30분 경북 상주시 청리면의 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교육센터. 부슬비가 내리는 폭 14m(2차로)의 횡단보도 한복판에 선 이 씨가 전조등을 켠 채 시속 50km 속도로 달려오던 실험 차를 향해 서둘러 손을 흔들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에는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 신호를 보내라고 말해둔 터였다.

브레이크가 걸린 실험 차는 이 씨로부터 정확히 70m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앞서 전조등을 켜지 않은 차로 실험을 진행했을 땐 45m까지 근접했다. 초당 14m(시속 50km)를 이동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행자는 전조등을 켠 차량이 다가올 때 1초 이상 더 빨리 위험을 감지하는 셈이다.

○ 낮에도 켜면 안전도 높아져

올해 7월부터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자동차에 시동을 걸면 저절로 켜지는 주간주행등(DRL)이 의무적으로 설치된다. 보행자와 다른 운전자에게 주행 차량의 위치를 알려주고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규정이다. 7월 이전에 제작된 차량은 전조등의 하향등이나 차폭등, 안개등을 이용해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지만 현재 주간에 등을 활용하는 국내 운전자의 비율은 매우 낮다. 이번 실험은 동아일보와 교통안전공단이 주간에 등을 켜는 것이 보행자와 운전자가 위험을 인지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공동으로 진행했다. 국내 언론이 주간에 등을 켜는 것의 효과를 직접 실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험 결과 이 씨는 전조등을 켠 실험 차일 때 켜지 않은 차보다 평균 15m 더 먼 거리에서 정지신호를 보냈다. 시속 40km일 땐 10m, 시속 50km에서는 25m, 시속 60km로 달려올 땐 10m 더 먼 거리에서 정지신호를 보낸 것이다.

차 안에서 진행한 실험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고속도로 나들목에서 본선으로 진입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본선 진입 부분 150m 뒤에서 달려오는 차량을 보고 “지금은 진입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 정지신호를 보내는 실험. 본선 진입을 기다리던 실험 운전자는 본선에서 달려오는 차량이 전조등을 켜지 않았을 때보다 전조등을 켰을 때 평균 10m 더 먼 지점에서 위험신호를 감지했다.

교통 전문가들은 “전조등을 켜면 다른 차나 보행자에게 해당 차의 움직임을 쉽고 빠르게 알려주게 돼 주의력과 식별력이 2배 이상으로 증가한다는 걸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특히 위험에 대한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의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효과가 클 것이라고 보고 있다. 조양석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실험자는 반응력이 다소 떨어질 수 있는 65세 이상의 노인인데도 전조등을 켠 자동차의 움직임에는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해석했다. 도로교통공단 조사 결과 2013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건수는 1만7590건으로 2001년보다 4.7배가량 늘어났다. 낮에도 전조등을 켜면 노인 운전자나 보행자의 사고 위험을 크게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 사고 줄이는 주간주행등

이미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캐나다 덴마크 폴란드 헝가리 등 주간주행등 켜기를 의무화한 나라가 많다.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 등 각국 교통연구기관의 전조등 관련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주간주행등 점등에 따른 교통사고 감소율이 북유럽 8.3%, 독일 3.0%, 미국 5.0% 등으로 나타났다. 안개가 자주 끼거나 흐린 날씨가 잦은 고위도 지역에서 주간주행등의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 최근에는 대기오염 등의 영향으로 각국의 도심지를 중심으로 주간주행등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운전자가 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7년 당시 국토해양부가 충북 강원 제주 및 경기 지역의 버스와 택시 3747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간주행등의 사고감소율은 19.0%였다.

하지만 국내 운전자들은 “초보운전자처럼 보일지 모른다” “에너지 소모율이 높을 것” “대낮에 웬 등이냐”며 주간에 등 켜기를 꺼린다. 실제로 본보 취재팀이 22일 오후 4시 반부터 5시 반까지 서울 청량리역 교차로, 세종대로 교차로, 남산 1호 터널 앞 등 3곳을 관찰한 결과 주간에 등을 켠 차량은 전체 통행차량(4672대)의 22.9%밖에 되지 않았다. 이마저도 대부분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오후 5시 10분을 전후해 켜는 차량이었다. 특히 터널 안으로 진입할 때는 비교적 점등률이 높아진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남산 1호 터널 안으로 진입한 차량 2032대 중 등을 켠 차량은 562대(27.6%)에 불과했다.

2009년 교통안전공단의 조사 결과 주간에 등을 켰을 때 교통사고가 28% 감소해 연간 1조2500억 원의 교통사고 손실비용이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낮에도 켜는 전조등이 운전자 자신의 안전은 물론이고 다른 운전자와 보행자의 안전까지 보장해 준다는 의미다. 황사와 미세먼지가 심한 요즘 주간에도 등을 켜고 ‘착한 운전’을 시작해야 할 때다.

상주=김재형 monami@donga.com / 권오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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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등#빛#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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