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무죄가 났던 선거법 위반 혐의가 9일 항소심에서 유죄로 뒤집히면서 법정 구속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4). 그의 운명을 가른 건 국정원 심리전단 김모 씨의 e메일 첨부파일이었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상환)는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이 파일들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면서 “국정원 심리전단의 선거개입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당초 검찰 수사 과정에서 수사팀과 지휘부 간 충돌이 벌어진 것도 이 e메일 작성자인 김 씨의 체포 여부에 대한 견해차 때문이었다. 당시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은 김 씨의 체포를 강력하게 요구했고,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사 단계에서도 이미 김 씨의 e메일 첨부파일을 선거법 위반 혐의 공소유지를 위한 결정적인 증거로 판단했다는 얘기가 된다.
김 씨의 e메일에서 나온 텍스트 파일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정부 정책 홍보와 야권 주장반박 내용 등을 담은 ‘425지논’ 파일과 트위터 계정 및 비밀번호, 활동내용 등을 담은 ‘ssecurity.txt’ 형태의 시큐리티 파일이다. 김 씨는 법정에서 “(e메일과 파일을) 작성한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다. 1심 재판부는 문서의 경우 그 자체로는 증거 능력이 없고, 작성자의 법정 진술만 인정하는 형사소송법상 ‘전문(傳聞) 증거 배척 법칙’에 따라 이 파일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항소심 재판부도 처음엔 이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법 315조에서 묘수를 찾아냈다. ‘상업 장부, 항해일지, 기타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는 증거로 할 수 있다’는 규정이었다.
재판부는 “해당 조항은 진술을 통한 것이 아니더라도 문서 작성 경위나 내용의 업무 관련성과 신빙성을 고려하여 문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할 길을 열어놓았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e메일 대부분이 평일 업무시간대에 작성됐고,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들이 기재돼 있었다는 점 등에 비춰 김 씨가 작성한 파일들을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로 봤다.
이에 따라 유죄 인정 범위는 1심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트위터 계정 수는 175개(1심)에서 716개로, 정치 관여 트윗글은 11만3000여 건에서 27만4800여 건으로 늘었다. 입증이 부족해 1심에선 무죄로 판단했던 선거 개입 트윗글도 13만6000여 건이나 새로 증거로 인정됐다. e메일 첨부 문서의 증거능력 인정을 놓고 1, 2심 재판부가 엇갈린 판단을 내린 만큼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이 부분은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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