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온 ‘미스터리 택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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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주문한 핫초콜릿 황당배송

4년 만에 배달된 택배 상자. 오른쪽 점선 안에 ‘2011’이란 연도 표시가 보인다. 권현철 씨 제공
4년 만에 배달된 택배 상자. 오른쪽 점선 안에 ‘2011’이란 연도 표시가 보인다. 권현철 씨 제공
“옛날 주소로 이런 게 왔네요.” “대체 이게 뭐죠?”

대전에 사는 자영업자 권현철 씨(38)는 지난달 31일 동네 이웃으로부터 택배 상자 하나를 건네받았다. 아무것도 주문한 기억이 없는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상자를 살펴보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2011년 4월 19일’, 택배 상자의 라벨에 인쇄된 배송 예정일이었다. 문제의 택배 상자에는 권 씨가 4년 전 G마켓에 주문했으나 받지 못했던 핫초콜릿(코코아)이 담겨 있었다. 놀란 권 씨는 상자를 뜯었다. 제품은 그가 주문한 그대로였지만 양철통 아랫부분엔 녹이 슬어 있었다. 2011년 7월 22일까지로 적힌 유통기한은 이미 3년 반이나 지나 있었다.

권 씨는 기억을 더듬었다. 2011년 4월 17일 그는 당시 여섯 살이던 아들이 좋아하는 핫초콜릿을 주문했다. 가격은 6900원이었다. 하지만 주문 후 1주일이 지나도록 물건이 오지 않았다. G마켓 홈페이지에는 운송장 번호나 상품 위치 등의 배송정보가 전혀 없었다.

화가 난 권 씨는 고객센터에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 따졌다. 안내 직원은 “확인해 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권 씨는 마지막 통화에서 “그냥 환불해 달라”고 한 후 자동 환불이 되는 줄 알고 더이상 항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환불이 이뤄지지 않았다. 핫초콜릿은 어딘가에 방치돼 있거나, 어딘가를 떠돌다 4년 가까이가 지나서야 도착했다. 권 씨는 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핫초콜릿을 좋아하던 여섯 살 아들이 열 살이 되고 난 후 배달이 됐다”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택배 상자는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동아일보가 G마켓과 택배회사(동부택배) 두 곳을 취재했지만 양쪽 모두 “정확히 알 수 없다”란 말만 했다.

G마켓 측은 2011년 4월 17일 권 씨가 주문한 내용은 확인이 되지만 이후에 있었던 일은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환불과 택배 위치 조회에 대해서는 “당시 상담사가 퇴사했고 최근 3년 이내 상담 내용만 조회가 돼 정확히 알 수 없다”며 “당시 택배회사가 배송물의 위치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동부택배 측은 “2011년 4월 19일자로 배송 완료 기록이 남아 있다”며 “정확한 사실은 좀 더 알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택배 상자가 물류창고 어딘가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도 제기됐다. 한 택배회사 영업소장은 “택배 상자가 분류 장비의 레일 옆이나 창고 틈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끼어 있었을 수 있다”며 “물류센터에서 지점에 택배를 보내는 과정에서 분실됐을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G마켓 측은 권 씨에게 보상 차원에서 제품 가격에 1만 원을 보태 1만6900원의 사이버 머니를 제공할 계획이다. 애초에 “물건 값만 돌려달라”고 했던 권 씨는 별다른 불만이 없다고 했다. 권 씨는 현재 폐쇄회로(CC)TV 기록을 보며 누가 배달을 했는지 확인 중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택배 물량은 2013년에 비해 7.5% 증가한 16억2325만 개로 역대 최대치였다. 당연히 배송 사고도 적지 않다. 한국소비자원의 지난해 8월 조사에서는 소비자 1000명 중 337명이 ‘배송사고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중 보상을 받은 경우는 25.5%에 불과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택배 배송 사고#동부택배#G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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