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어르신 효도공연 위해… 변사로 나섰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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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 중문과 한상덕 교수, 무성영화 ‘검사와…’서 열연
화개면 20개 마을서 순회공연

15일 하동녹차연구소 공연에 앞서 익살스러운 변사 역을 연습하고 있는 경상대 한상덕 교수. 경상대 제공
15일 하동녹차연구소 공연에 앞서 익살스러운 변사 역을 연습하고 있는 경상대 한상덕 교수. 경상대 제공
“피고는 마저막(마지막) 할 말이 없는가?” “예, 저는 죽고 싶습니다.”

고전에 대한 깊은 식견과 명강의로 널리 알려진 50대 후반의 대학교수가 시골 어르신들 앞에 변사(辯士)로 선다. 변사는 무성영화(無聲映(화,획)) 시대 스크린에 펼쳐지는 극의 진행을 설명하고, 등장인물의 대사를 관객들에게 재미있게 전달해 주던 사람이다.

3차원(3D)이나 아이맥스 영화가 쏟아지는 시대에 ‘활동사진 해설가’로 나선 사람은 국립 경상대 중어중문학과 한상덕 교수(57). 15일 오후 2시 한 교수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경남 하동군 화개면 부춘리 하동녹차연구소(이사장 윤상기 하동군수) 2층 대회의실에서 ‘검사(檢事)와 여선생’이라는 무성영화의 변사로 나설 예정이다.

검사와 여선생은 1936년 김춘광이 ‘검사와 사형수’로 발표한 4막 5장 신파희곡. 1948년 윤대용 감독, 이업동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남편을 죽였다는 살인 누명을 쓴 여선생이 검사가 된 옛 애제자의 도움을 받아 석방되는 이야기를 그린 흑백 무성영화다. 한 교수의 부탁을 받은 경상대 도서관이 한국영상자료원에 의뢰해 어렵게 영상을 구입했다.

한 교수는 “공연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시골 지역 어르신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무료 공연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은 한 교수가 직접 각색을 했다. 영화 중간에 춤과 재담, 가수 조미미의 히트곡 ‘선생님’ 등을 곁들일 예정이다. 그는 “15일 녹차연구소, 2월 10일 오후 2시 화개면사무소 공연에 이어 화개면 지역 20개 마을 노인정을 돌면서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위한 공연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하동녹차연구소는 한 교수가 졸업한 부덕초등학교(폐교) 자리에 들어섰다. 고향에 계시는 팔순 부모와 이웃들도 그의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효도공연’ 성격이 가미된 셈이다. 그는 “어르신뿐 아니라 지난해 11월 말 발생한 화개장터 화재로 시름에 빠진 분들에게도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하동군이 지급하는 2회 출연료 100만 원 전액을 화개장터 재건기금으로 내놓기로 했다.

한 교수는 이미 재능기부로 유명하다. 2011년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원숭이로 분장하고 하동공설시장에서 매달 한 차례 1인극을 선사했다. 2012년엔 하동군 전역을 돌면서 순회공연을 펼쳤다. 2013년엔 거지로 분장하고 익살스러운 연기를 하며 어린이들에게 큰 지혜를 가진 ‘거지(巨智)’가 되라고 당부했다. 한 교수는 경상대에 다닐 때 연극동아리인 ‘극예술연구회’에서 연극에 입문했고 이후 진주극단 ‘현장’의 단원으로 오래 활동했다. 경남도 연극제에서 ‘연기대상’을 받고 중국 무대에도 선 베테랑이다.

그의 특강은 ‘전국구’다. 중앙부처는 물론이고 광주광역시 울산시 경남도 등에서 200회 이상 강의했다. 경상대에선 2년 연속 ‘가장 잘 가르치는 교수상’을 수상했고 2013년엔 교육기부 표창도 받았다. 지난해에는 ‘고전으로 풀어보는 공직자의 청렴’을 주제로 강의해 경남도인재개발원 베스트 강사로 뽑혔다. 한 교수는 “가능하면 주민들에게 기쁨을 주는 재미있는 공연을 자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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