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담배꽁초 휙… 떼지어 무단횡단… “나만 편하면 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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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연말연시 부끄러운 서울

아무데서나 흡연 지난해 12월 25일 새벽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놀이터에서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주변 의자와 바닥에는 각종 쓰레기가 널려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아무데서나 흡연 지난해 12월 25일 새벽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놀이터에서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주변 의자와 바닥에는 각종 쓰레기가 널려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일본이나 유럽의 주요 관광지에선 종종 한글로 쓰인 ‘침 뱉지 마시오’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외국에서조차 한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이런 경고문을 붙여놓을 판이니 국내에선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인천공항에 입국해 공항 밖으로 나오는 순간, ‘퉤’ 하고 침을 뱉는 한국인을 본 외국인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에 근접한 부자 나라? 5000년 역사의 찬란한 문화 강국?

전광우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선진 시민문화를 가로막는 것으로 ‘일상의 나쁜 습관’을 꼽았다. “미국 영국 일본에선 길바닥에 침을 뱉는 사람이 없어요. 길은 혼자가 아닌, 타인과 함께 쓰는 것인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서 나오는 행동이에요.”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잘못된 습관은 비단 안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선진국 진입에 걸림돌이 되는 행동들은 알고 보면 ‘길거리 침 뱉기’처럼 우리가 늘 마주하는 일상에 스며 있다. 2015년 현재 우리 사회 시민의식은 어느 수준일까. 본보 취재팀이 각각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시민들이 붐비는 서울의 길거리에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관찰해 봤다.

○ 내가 정하는 ‘흡연장’과 ‘쓰레기통’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7시. 서울역 앞은 쓰레기로 가득 했다. 롯데아울렛 서울역점 앞 화단에 심어져 있는 나무 사이에는 빈 음료 캔과 휴지, 담배꽁초 10여 개가 듬성듬성 꽂혀 있었다. 환경미화원 이모 씨(65)는 쓰레기를 치우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 씨는 “버리고 싶은 곳에 던져버리니 서울역 전체가 거대한 재떨이가 됐다”며 혀를 찼다. 주변을 둘러보니 서울역 시계탑 아래는 물론이고 바로 옆 음식점 입구에도 담배꽁초가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역으로 들어가는 문 왼편에 마련된 48m² 크기의 흡연실 옆도 온통 꽁초 투성이였다. 취재진이 찾은 시각에 흡연실 밖에서 15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흡연실 안에서 피우는 사람은 4명밖에 없었다.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던 한모 씨(32)는 “흡연실이 더럽고 답답해서 여기서 피운다”고 말했다.

○ 일방통행도 내키면 ‘역주행’

같은 날 오전 11시 반 서울 중구 명동2가의 한 호텔 앞. 일방통행인 2차로로 택배회사의 화물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갑자기 음식 배달을 하는 오토바이가 반대 방향에서 역주행해 도로로 끼어들었다. 화물차가 속도를 늦춰 사고는 피했지만 순간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시민 2명이 깜짝 놀라 급히 도로 바깥쪽으로 몸을 피했다. 자칫하면 오토바이와 충돌할 뻔한 상황이었다. 오토바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인도를 휙휙 지나고 있었다.

이런 ‘배려의 실종’을 많은 전문가는 ‘교육 부재’에서 찾는다. 유종호 전 연세대 석좌교수는 “심성과 행동은 가정에서 부모들이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가정교육이 실종돼 예의와 배려가 사라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집에서 “공부 잘하라”는 이야기만 할 뿐, 공동체 시민 교육은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것이다.

취재팀은 1일 오후 8시 지하철 1호선 종각역 탑승구를 관찰했다. 인천 방향 지하철이 진입했다. 3-1번 객차 노약자 보호석에 앉아 있던 백발노인이 지하철이 멈추자 돌돌 만 껌 종이를 문 밖으로 휙 집어던졌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동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 듯했다.

○ 어둠에 묻히는 양심

1년 중 유동인구가 무척 많은 날인 지난해 12월 24일 오후 9시.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앞 인도에는 유흥업소 전단이 뿌려졌다. ‘방앗간 8만9000’ ‘3만9000원 입술마크’ ‘립카페 3만9000’. 원색으로 새겨진 문구의 광고지였다. 밤에 강남역을 지나려면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이런 전단을 밟고 지나야 한다. 어린이들도 가족과 함께 빈번히 지나지만 전단을 뿌리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같은 시각,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거리에선 여기저기서 욕설이 넘쳐났다. 손님이 택시를 잡고 기사에게 행선지를 말하는 사이 뒤에 선 오토바이 운전자는 “빨리 타, 이 ××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 택시기사는 차가 막히자 경적을 울리면서 앞에다 대고 “술 취해서 운전하지 마, ××야”라고 외쳤다.

비슷한 시각,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도로는 난장판이 돼 있었다. 한 신발 매장 앞에서는 한번에 5명, 최대 20여 명이 떼를 지어 무단횡단을 했다. 양쪽으로 50m씩만 걸어가면 횡단보도가 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단횡단을 택했다.

우리 사회의 ‘무질서’ ‘무배려’는 밤새 도처에서 발견됐다. 박희봉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의 사회 자본은 혈연, 지연, 학연처럼 ‘아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형성돼 있어 밖에서 남을 만날 때 서로를 불쾌하게 만드는 데 익숙하다”며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더욱 약해지고 있고 이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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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키워드는 ‘배려’


동아일보는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시리즈의 첫 출발점으로 ‘배려’를 키워드로 선정했다. 타인을 배려하는 것은 소소한 갈등을 예방해 주위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달에는 가족에 대한 배려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거창한 배려를 하기보다는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돌아보자는 취지다. 성한기 대구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모든 사회의 기본 단위가 가족이다. 가족 내에서 화목하게 지내야 사회생활도 즐겁게 할 수 있고, 가족관계에서 문제가 있으면 사회생활에서도 문제가 생긴다”고 조언한다.

가족은 세상을 담고 있다. 김영란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가족을 들여다보면 세상의 모든 문제가 함축돼 있다”고 말한다. 남녀 문제, 세대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가 가족이라는 작은 단위 안에 축약돼 있다는 것이다. 본보는 시리즈를 연재하며 ‘작은 변화’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독자 여러분의 의견과 제안을 e메일(change2015@donga.com)로 받는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으로 로그인해 해당 기사에 대한 의견을 게시할 수 있다. 또 동아닷컴 첫 페이지에서 시리즈 배너를 클릭하면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기사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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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샘물 evey@donga.com·김도형 기자
#담배꽁초#무단횡단#길거리 침 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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