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악몽에도 승객안내 외면
5월 31일 佛 출발예정 대한항공… 활주로 갔다가 점검차 대기장으로
기체고장 설명 않고 “모르겠다”만
5월 31일 프랑스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에서 인천으로 출발할 예정이던 대한항공 에어버스 380기가 기체 문제로 4시간가량 연착됐지만 승객들은 자세한 안내방송이나 승무원의 설명 없이 몇 시간 동안 기내에서 마냥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오후 9시(현지 시간)에 출발하려던 대한항공 KE902편(에어프랑스 AF262편과 공동 운항)은 이륙을 위해 활주로까지 이동했으나 갑자기 “관제탑에서 이륙 허가를 내려주지 않아 대기하고 있다”는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하지만 여객기는 방송과는 달리 회항해 기체 점검을 받으러 주기장으로 들어갔다. 기장은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기체 점검을 잠시 받은 후 20∼30분 내로 출발한다’는 짧은 방송만 내보냈다.
더이상 자세한 설명 없이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 찜통 같은 기내에서 총 333명의 승객은 영문도 모른 채 불안해했다. 승무원들에게 이유를 물어도 “기장님이 정확한 고장 원인을 말해주지 않는다” “저희도 자세한 사항은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서울이 최종 목적지였던 스페인 승객 안토니오 씨는 사무장을 찾아가 “왜 승무원들이 전부 모른다고만 하느냐, 왜 입을 닫고만 있느냐”며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에 불안해진 승객들 사이에서는 “출발하기 전 기체에서 연기가 나 관제탑에서 출발을 못하게 한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륙 예정 시간이 2시간 이상 지나자 기내 방송도 뜸해졌고 승무원들마다 기체 수리 과정과 총 탑승객 수에 대한 설명도 서로 달랐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체 보조동력장치 중 에어컨 부분을 담당하는 밸브 부분이 고장 나 이륙이 늦어진 것. 출발 예정 시간 후 2시간 정도가 지나자 일부 승무원들은 “문제가 있는 부분의 부품을 교체한 뒤 이륙을 위해 마지막으로 서류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이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대한항공 파리지점장 김태훈 씨는 “기체 점검 결과 보조동력장치에 문제가 있어 새 부품으로 교체를 하기 위해 오후 11시 30분경 파리 외곽 지역에 사람이 갔고 다음 날 0시 15분경부터 교체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비행기는 새 부품으로 교체한 뒤 1일 0시 45분에 출발했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승객들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 불안만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선박이나 항공기가 고장 및 사고가 났을 경우 승무원들이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이 승객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피해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정보를 여전히 감추고 숨기려는 관행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지난달 30일 오후 2시 15분 부산에서 출발한 서울행 무궁화 1218호 열차에서도 객차 내 전기공급용 발전기 이상으로 수차례 정전이 있었지만 승객이 항의하기 전까지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해당 열차는 정전으로 평택역과 수원역, 안양역에서 평소보다 긴 5∼15분가량 정차했다. 더운 날씨에 에어컨도 꺼진 컴컴한 객차에서 한참을 기다린 승객들은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승객 최모 씨(33)는 “한 여성이 객차 내 인터폰으로 항의했고 그제야 ‘전원공급장치에 이상이 생겼다’는 방송이 나왔다”며 “사고가 발생하면 무슨 일이 생겼는지, 계속 기다려도 되는 건지 승객들에게 빨리 알려줘야 하는데 안내방송도 없고 열차 내에 승무원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코레일 측은 “역에 정차했을 때 승무원들이 정전으로 인해 문을 수동으로 일일이 여는 데 집중하느라 안내방송이 늦어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