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떠는 아주머니가 청심환 찾을 때, 내 가슴도 미어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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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피해가족을 살펴라]
슬픔 보듬는 자원봉사자들

“끼니 꼭 챙겨드려야” 분주한 자원봉사자들 22일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식사를 나눠줄 준비를 하고 있다.
사고 발생 일주일째인 이날도 전국 각지에서 봉사자와 종교계 종사자, 의료인들이 찾아와 실종자 가족 지원에 힘썼다. 진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끼니 꼭 챙겨드려야” 분주한 자원봉사자들 22일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식사를 나눠줄 준비를 하고 있다. 사고 발생 일주일째인 이날도 전국 각지에서 봉사자와 종교계 종사자, 의료인들이 찾아와 실종자 가족 지원에 힘썼다. 진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어제는 한 유족이 얼굴이 상하지 않은 온전한 시신을 찾게 되자 ‘아들이 마지막까지 효도하고 갔다’며 넋두리하더군요. 옆에서 같이 많이 울었어요. 봉사를 하다 보면 잠 못 자고 힘든 일도 많지만 그런 분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걸요.”(경기 안산 단원고 학부모 봉사자)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임시 합동분향소 설치를 하루 앞둔 22일,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대한적십자사 지원센터는 조문객을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현재 이곳에는 적십자사 안산지구 회원 785명과 경기 시흥지구 봉사자 976명이 하루 80여 명씩 조를 짜 24시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단원고와 올림픽기념관 등에서 안내 배식, 구호물품 접수 및 배분, 실종자 가족 돌보기 등을 맡고 있다.

○ “운동장 돌아 나가는 운구차 볼 때마다 울컥”

현장에서 직접 실종자 가족과 유족을 대하는 자원봉사자들은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졌다고 입을 모았다. 적십자사 안산지구 소속 봉사자인 조명희 씨도 마찬가지였다. 큰아들이 단원고를 졸업한 조 씨는 평일 퇴근 후 오후 7시부터 밤 12시까지 매일 단원고 4층 강당에 마련된 임시 대기소를 찾았다.

그는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인 심모 군의 아버지가 강당을 지키며 아들이 살아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리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심 군의 시신이 발견됐다니 너무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미어진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20일부터 현장에 지원을 나온 적십자사 시흥지구의 이상기 회장은 끝까지 승객들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승무원 박지영 씨의 이웃사촌이다. 시흥시 신천동에 사는 이 회장은 박 씨에 대해 “시장 일을 하는 어머니를 도와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이었다. 착하고 이해심 많은 아이였다”며 안타까워했다.

○ “실종자 가족들, 처음처럼 화를 내면…”

실종자 가족이 머물고 있는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는 전국 곳곳에서 2000여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안산시 자율방범대 연합본부 소속 봉사자들은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는 실종자 가족을 승합차 4대로 최대 하루 10차례씩 나르고 있다. 봉사자 대부분이 안산에서 식당, 귀금속 가게, 자동차 정비소 등의 자영업을 하거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로 실종자 가족 및 유가족과 이웃인 경우가 많다.

봉사에 참여한 허정섭 씨는 “팽목항으로 가는 승합차 안에서 듣는 유가족들의 울음소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먹먹하고 서럽다. 시신을 다 찾을 때까지 자녀를 보는 마지막 길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대한약사회 회원들도 17일부터 진도 체육관 강당 정문 앞에서 의약품을 나눠주는 봉사단을 꾸렸다. 청심환과 드링크제 알약 파스 등을 준비하고 무료로 나눠준다. 청심환은 3시간 만에 70여 개나 나갈 정도로 실종자 가족들의 몸 상태는 최악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자 자녀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화일까 두려워 손을 떨면서 청심환을 구하러 온 실종자 가족도 있었다.

대전에서 운영하던 약국 문을 잠시 닫고 봉사 중인 박현옥 약사는 “단원고 학생 또래의 자녀가 있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실종자 가족들이 이젠 울지도, 분노하지도 않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게 너무 위험해 보인다. 차라리 계속 절규하고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면 마음이 이렇게 아프진 않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가슴 아픈 소식에 무작정 진도를 찾아온 개인 봉사자도 눈에 띄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강동연 씨는 19일 차를 몰고 진도 체육관에 도착했다. 파란 조끼를 입고 빨간 고무장갑을 낀 강 씨는 봉사자 천막에서 쪽잠을 자며 강당 내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그는 “19일에만 해도 실종자 가족들이 분노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불안할 만큼 고요하다. 제발 단 한 명이라도 생존자가 있다는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산=최고야 best@donga.com·진도=손효주 기자
#세월호 침몰#자원봉사자#실종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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