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대전 구도심 ‘추억의 3大 명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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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역사의 이발소, 53년 된 권투도장, 그리고 46년 종지기.’

대전 중구 대흥동 일대 ‘추억의 3대 명물’을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스토리로 살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가서 보는 듯한 광경들이다.

대흥동 중구청 앞 쌍암이발소. ‘삐그덕’ 소리 나는 알루미늄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주인 김태운 씨(76)가 맞이한다. 이발소 안은 마치 1960년대 박물관에 들어선 듯하다. 비누 조각을 모아 솔로 ‘박박’ 문질러야만 면도용 거품이 나는 플라스틱통, ‘바리캉’이라 불리는 이발기계와 쇠가죽에 ‘삭삭’ 갈아 사용하는 면도칼….

김 씨는 1950년대 후반 중구 선화동 옛 충남도청 앞에서 이발소 문을 연 뒤 20년 전에 이곳으로 옮겼다. 이발 경력만도 60년에 육박하니 대전에서는 ‘최고령 헤어디자이너’다. 이발소 면적이라야 13∼16.5m2(4∼5평) 남짓. 뒤로 젖혀지는 의자와 고개를 푹 숙여야만 머리를 감을 수 있는 세면대, 물통 등은 분명 이발소 박물관이다. 한쪽에는 ‘둔산동 황대감님’ ‘장군님’ ‘도청 국장님’ 등이라고 씌어진 수십 개의 염색약이 쌓여 있다. “오셔야 할 손님들이 한 달이 돼도, 두 달이 돼도 안 오셔. 나중에 알고 보면 떠났다는 거야!(별세). 그게 가장 아쉽지 뭐.” 김 씨는 하루 1, 2명 손님을 기다리며 난로 연탄불을 바꾸고 있다.

26일 낮 11시 50분경 대흥동 천주교 성당. 60대 후반 남자가 꾸부정한 모습으로 성당 종탑을 향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달팽이 모양의 원형계단은 젊은 사람도 숨이 차오를 정도로 가파르다. 하나 둘, 열, 스물, 예순, 백, 백하나, 백둘…. 계단만 해도 100개가 훨씬 넘어 6, 7층 높이는 돼 보였다.

이곳에 도착한 조장형 씨(68). 22세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무려 46년 동안 성당 종을 맡은 종지기다. 정오에 맞춰 종을 쳐야 하기 때문에 10분 전부터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것. 조 씨는 휴대전화를 지켜보다 정오를 알리자 종과 연결된 밧줄을 온몸에 휘감고 두 팔로 힘차게 잡아 당겼다. ‘뒹∼뒹∼뒹∼’ ‘땅∼땅∼땅∼’ 크기가 다른 세 종류의 종을 번갈아 치자 종소리는 ‘도∼미∼솔∼’처럼 제각각 다른 소리로 조화를 이뤄 냈다.

종은 매일 정오, 오후 7시에 하루 2회, 한 번 칠 때마다 1분 안에 40회를 친다. 이 종소리는 대흥동을 비롯해 선화동 은행동은 물론이고 2km가량 떨어진 부사동 중동 용두동 중촌동까지 들려 주민들에게 시보(時報) 역할을 했다. “성당 종소리가 시민들에게 시간 길라잡이를 하죠. 힘이 닿을 때까지 종을 칠 생각입니다.”

성당 길 건너 옛 은행동 파출소 뒤 골목길 안에는 시간이 멈춘 곳이 있다. 슬레이트 지붕에 벽돌 담 구조의 66m2(약 20평) 낡은 단층 건물, 바로 53년 역사를 지닌 한밭복싱체육관이다.

이 자리에 권투도장이 생긴 것은 전쟁 상흔 복구가 한창이던 1961년. 지금까지 53년 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 왔다. 국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복싱 체육관이다. 이곳에서는 프로복싱의 황금기였던 1970, 80년대에 세계챔피언인 염동균 선수를 비롯해 수많은 우수 선수를 배출했다. 배고픔을 달래며 ‘인생 역전’을 꿈꿨던 젊은이들이 청춘을 불태웠던 곳. 2대 관장 격인 이수남 관장은 “‘헝그리 복서’라는 말이 바로 이곳에서 나온 말”이라며 “김득구 선수 사망으로 사양길에 접어 들었으나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다이어트를 하거나 무술경관 등을 지원하려는 원생 30여 명이 꾸준히 이곳에서 운동을 한다.

박경덕 중구문화원 사무국장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과거의 모습은 관심을 갖는 것 이상의 지원도 필요하다”며 “이제 원도심 문화는 개발이 아니라 과거의 문화 콘텐츠를 살리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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