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삼킨 비닐하우스 일가족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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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얼어붙어… 家長 손 못써
90대 장모-뇌중풍 앓던 아내… 두 아들이 구하려다 함께 참변

영하 13.8도로 올 들어 가장 추웠던 13일 새벽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구산동 화훼농장의 비닐하우스 안 PVC 창고. 박모 씨(72)와 아내(65), 장모 김모 씨(97), 박 씨의 아들 2명(40·37) 등 5명이 이불을 두세 겹으로 덮고 추위를 견디며 자고 있었다. 한기를 막기 위해 기름보일러를 켰지만 찬 기운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박 씨는 3년 전 인근의 덕양구 신도동에서 보상금을 받고 이곳으로 옮겨 왔다. 그동안 두 아들과 함께 비닐하우스 10개 동을 임차해 꽃을 길렀다. 밤늦게까지 일하며 PVC 창고에서 가족과 함께 지냈다. 꽃은 온도와 습도에 예민해 한시도 곁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아 거동이 불편한 장모와 평소 뇌중풍을 앓고 있던 아내도 돌봐야 했다.

오전 6시 14분경 비닐하우스 안 기름보일러 옆 배전판 쪽에서 불이 붙었다. 이른 새벽 농장 일을 하러 나온 네팔인 여성이 가장 먼저 발견하고 박 씨를 깨웠다. 박 씨는 아들에게 119에 신고를 하게 한 뒤 비닐하우스 밖으로 뛰쳐나갔다. 수도관에 연결된 호스를 끌고 와 불을 끄려 했다. 하지만 꽁꽁 얼어붙은 수도관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았다. 불은 순식간에 비닐하우스 전체를 삼켰다. 두 아들도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구하려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졌다.

박 씨를 제외한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불은 2시간 만인 오전 8시 17분경 완전히 진화됐다. 박 씨 가족이 살던 비닐하우스 1개 동 등 495m²가 불에 탔다.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비닐하우스#뇌중풍#화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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