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2.0 이상 전액장학금 칠전팔기 도전적 인재 키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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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모 KAIST총장 국내 첫 인터뷰

강성모 총장이 7일 오전 대전 유성구 총장실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서남표 전임 총장의 소통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펜을 들었다. 그는 그림을 그려보이며 소통없이 직선으로만 가다가는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넘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전=전승민 기자 enhanced@donga.com
강성모 총장이 7일 오전 대전 유성구 총장실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서남표 전임 총장의 소통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펜을 들었다. 그는 그림을 그려보이며 소통없이 직선으로만 가다가는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넘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전=전승민 기자 enhanced@donga.com

2007년 3월 중순 미국 캘리포니아주 UC머시드대학 교정에서 학생 1명이 숨졌다. 실족사였지만 "폭력배가 살해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렇지 않아도 신입생 부족난을 겪던 학교는 당혹했다. 한인 최초의 미국 대학 총장인 이 대학 강성모 총장은 학생들을 강당으로 불러 모아 호소했다. "우리 가운데 '건설자(builder)'와 '파괴자(destroyer)' 두 부류가 있다. 다 같이 학교를 건설하는데 참여해 달라." 학생들은 대형 플래카드에 숨진 학생에 대한 추모 글을 적었다. 소송을 벼르던 학부모가 감동한 나머지 "내 아들은 죽었지만 훌륭한 학교"라며 학생들을 되레 안심시켰다. 이를 계기로 학교는 학생수 5000명 대학으로 성장했다.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준 강 총장은 '부드러운 선장(Captain Smooth)'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 강 총장이 2월 26일 KAIST 총장에 취임하자 오랜 내홍을 극복하고 안정 속의 개혁을 추진할 것이란 기대가 높다. 하지만 두 전임 총장이 중도하차할 정도로 갈등의 뿌리가 깊어 계속 부드러운 선장으로 남을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7일 오전 10시 대전 유성구 KAIST 총장실에서 국내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는 낮 12시 반까지 2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강 총장은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할아버지(강대현)를 생각하면서 조국에 봉사할 기회를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서남표 전임 총장의 개혁을 높이 평가했지만 소통의 방식과 학생 정책, 연구 및 프로젝트의 주체 등 여러 부문에 대해 이견을 보여 적지 않는 변화를 예고했다.

―취임 일성으로 소통을 강조했지만 '제 맘에 들어야 소통'이라는 편의적 해석도 있다.

"머시드대학에서 보여준 게 소통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통한다. 불평을 무작정 다 들어주겠다는 건 아니다. 소통을 해보고 안 되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그래야 신뢰가 쌓인다. 신뢰가 있어야 공동의 목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다."

그는 아침 일찍 부인 강명화 여사와 함께 교정의 커피숍과 도서관 등을 돌며 학생과 환경미화원 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인터뷰 때 서양 문화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생각나지 않았다면서 프랑스 빵의 이름 '크루아상(croissant)'을 기자에게 메일로 보내온 시각은 다음날인 8일 오전 4시 48분이었다. 그가 학교에서 활동을 시작하는 시각은 이 즈음이다.

―전임 총장의 개혁 조치 가운데 공감하는 부분은 어떤 것이고 평가가 다른 부분은 무엇인가.

"서 총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도 많았다고 본다. 우선 테뉴어(정년보장) 심사 강화는 잘한 일이다. 기부문화 확산도 공로다. KAIST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분들이 거액을 기부해 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었다. 정부가 허가한 정원 외에 교수를 더 많이 선발한 일도 잘했다. KAIST 총장회의와 국제협력으로 학교 위상이 높아졌다. 하지만 개혁을 너무 빨리 추진했다. 그래서 소통의 문제로 넘어졌다. 정책의 추진과 지속을 위해 구성원들이 하나하나의 협조가 중요하다."

―전임 총장이 수백원을 들여 추진한 온라인전기자동차와 모바일하버를 시장에 맡긴다는데.

"더 이상 학교 예산은 투입하지 않겠다. 두 사업은 기술개발 단계를 지나 사업 단계여서 시장에 맡겨야 한다. 전기자동차는 이미 기업 투자가 이뤄졌고 철도 분야의 진출이 유망하다. 모바일하버는 사업성 때문에 기업의 투자가 없다. 앞으로 프로젝트는 교수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따오면 지원하는 방식을 취하겠다. 총장이 직접 추진하지는 않겠다. 치어리더 역할만 하겠다."

―KAIST에서 앞으로 무엇을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할 생각인가?

"KAIST는 큰 재목을 길러내는 것으로 세금을 지원하는 국가와 국민에 기여해야 한다. 풀에 베일 것(bleeding edge)을 각오하면서 나아가려면 도전적인 인재가 필요하다. 다양성과 개성이 있고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용기를 가져야 한다. 현재 평점 2.9점 이하는 돈(기성회비)을 내야하기 때문에 그 이하의 점수를 맞은 학생들이 교수에게 애걸복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동아리 활용을 많이 하고 다양한 교양과목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는 평점 2.0이상 3.0미만의 경우 기성회비 부과를 면제해 줄 방침이다. 패자부활이 가능하도록 연차초과자 수업료 부과와 학점 재수강 제한(3과목)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엉어강의는 그대로 유지하되 영어 실력이 부족한 학생은 입학 전에 영어캠프에 다닐 수 있게 하겠다. 고르게 B학점을 받은 학생보다는 A도 C도 있는 학생이 더 가능성이 있다. 모 난데도 있는 인간이 필요하다."

―그러면 KAIST에서는 평점 2.0 미만의 낙제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장학금을 받는 셈이다. 반값 등록금을 주장하는 다른 대학 학생들에 비해 과도한 혜택 아닌가.

"더 좋은 인재를 길러내려면 그 정도의 투자는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과도할 만큼의 예산이 수반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총장은 학교의 시멘트 공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좋은 과일이 열리는 나무를 길러내는 사람이다."

지난 봄 학기를 기준으로 KAIST의 2.0이상 3.0미만 학생은 학부생 전체 4060명 가운데 14.58%인 592명. 이들이 낸 기성회비는 9억7600만원이다. 학기마다 기성회비를 면제해주려면 이 정도의 예산이 더 들어가는 셈이다.

―교수의 경쟁력도 높여야 하지 않은가.

"우선 전임 총장보다 테뉴어 평가를 강화할 계획입니다. 현재의 테뉴어 심사와 승진, 재계약 평가기준은 교육 30%, 연구 40%, 학교기여도 30%였다. 강의와 학생지도를 내용으로 하는 교육은 기본점수를 주어 대동소이했다. 유예기간 후인 내년부터는 교육을 소홀히 하면 테뉴어 통과가 어렵다. 동영상 강의를 만들에 미리 배포하고 실제 수업시간에는 토론을 한다든지, 별도로 시간을 내 영어강의에 미숙한 학생들을 지도한다든지, 영어강의를 잘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학생 상담을 많이 하고 사고를 미연에 예방하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연구부문은 전문가 평가(peer review)를 그대로 시행해 현행 수준을 유지할 생각이다. 노벨상 수상자에 준하는 스타교수의 영입을 적극 추진하겠다. 임용 교수의 수를 줄이더라도 스타교수를 영입하겠다."

―대덕특구를 실리콘밸리 같은 창업특구를 만든다고 했다.

"카이스트와 주변의 유수한 연구소들이 창조경제의 전진기지를 마련해야 한다. 다양성과 소통, 융합의 문화가 중요하다. 실리콘밸리와 벨연구소의 많은 아이디어는 식당과 커피숍에서 일어난다. 식당에서 한두 시간씩 식사를 하다가 냅킨에 메모한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경우가 적지않다. 그러려면 격식없이 어울리는 공간과 마음을 트는 일이 필요하다. 대전시에 실리콘밸리의 주요 도시들과의 자매결연을 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가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 교수와 학생의 창업을 어렵게 만드는 휴직기간 제한 규정 같은 것을 개정해야 한다. 창업을 원하는 학생들이 학교 기숙사를 활용하고 싶어도 재학생 수용하기에도 부족해 그러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부분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 크게는 정부가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죽이지 않고 기술을 매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입지전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들었다.

"할아버지는 1919년 4월 경성 독립본부에서 상하이 임시정부로 헌법원문 등을 가져가는 등 독립운동을 했다. 집이 평양 근처에 있었는데 일본 경찰이 불을 질러 경기 양평으로 이사를 갔다. 집안이 어려워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다른 집에 들어가 입주 가정교사를 했다. 고교 1학년 때 고교 2학년 과외하기도 했다. 비전(Vision), 이노베이션(Innovation) 인내(Perseverance)를 의미하는 'VIP'가 좌우명이다. 목표를 정하고 더 잘 해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인내하면 좋은 결실을 거둔다는 뜻이다. 머시드대학 퇴임기념석의 동판에 이렇게 썼다. '열정과 마음을 다해 뜻하는 바가 있으면 보다 좋은 길이 열린다(Where there is a will with a heart, there is a better way).'"

강 총장은 1963년 고교 졸업과 동시에 공군에 입대해 복무한 뒤 1966년 연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연세대 4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페어래이디킨슨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UC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AT&T 벨연구소 연구원, 일리노이대 교수, 샌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 공대 학장 등을 지내며 전자회로 설계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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