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소설을 즐겨 읽으며 창작 시를 쓰고 만화를 그리는 감수성 풍부한 여학생,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좋아하는 군사마니아 남학생.
최근 ‘제19회 철학 올림피아드’ 중학생 부문에서 각각 최고상인 대상과 2등 상인 금상을 받은 서울 신천중 3학년 최승연 양(15)과 경기 한빛중 3학년 허도 군(15)의 평소 생활은 ‘철학’과는 거리가 멀다. 청소년을 위한 철학책을 읽지도, 철학 올림피아드 기출문제의 모범답안을 보며 대회를 준비하지도 않았다. 다큐멘터리 PD를 꿈꾸는 최 양과 군사전문 공학자를 꿈꾸는 허 군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활동에 몰입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인간에게 예술은 꼭 필요한가?’라는 난해한 철학 올림피아드 문제에 돋보이는 답안을 써냈다. 비결이 뭘까. 자신의 관심분야에 몰입하며 점차 다양한 분야로 학습범위를 넓혀간 두 학생의 ‘몰입형 융합학습법’을 소개한다. 》
서울 신천중 3학년 최승연 양
[대상] 문학, 시, 만화, 영상이 생활 속 철학과 만났을 때
최승연 양의 취미는 문학책 읽기다. 초등 저학년 때부터 하루에 많게는 책을 1권씩 읽었다. 학교 도서관에 매일같이 출근도장을 찍으며 판타지소설 ‘해리포터’, 소설 ‘꺼삐딴 리’ 성장소설 ‘앵무새 죽이기’ 등 다양한 소설을 독파했다. 독특한 점은 모든 독서 장르가 문학작품이었다는 것. 역사도 소설 ‘조선왕조실록’ ‘왕의 눈물’ 등을 읽으며 알아갔다. 최 양은 습작형태로 50여 편의 짧은 시도 썼다. 하굣길에 아파트 단지에 목련꽃이 핀 것을 보고 자신이 감상을 자유롭게 적는 식이었다.
“비문학 책은 딱딱하고 재미가 없었지만 소설을 읽으면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처럼 몰입되기 때문에 재미있었어요. 이때 감수성은 물론 어휘력도 풍부해질 수 있었어요.”(최 양)
중학교에 진학한 최 양.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초등시절 문학작품을 읽으며 쌓았던 교양과 자연스럽게 접목되면서 한층 심화한 지식으로 발현되기 시작했다.
“초등생 시절 책을 읽을 땐 어떤 생각이나 교훈을 얻으려고 하기 보단 가볍게 읽었어요. 조지 오웰이 쓴 ‘동물농장’을 읽으면서 ‘그 돼지 참 똑똑하네’ 정도만 이해하고 넘어갔죠. 하지만 중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면서 소설내용과 역사적 사실은 다른 점이 적잖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최 양)
시 쓰기에는 문제의식이 더해졌다. 일상에서 보고 들으며 느낀 내용을 문학과 접목했다. 신문 및 방송 뉴스를 보며 생각했던 문제의식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중학교 때 쓴 창작 시 ‘개미와 베짱이’는 대표적인 예. 부지런한 개미를 좋게 바라보는 통념을 뒤틀어 ‘많은 사람이 성공을 위해 개미처럼 분주하게 살아가지만 사색하고 노래를 부른 여유를 가진 베짱이도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여유 없이 살아가는 또래 친구들의 모습으로 비유했다.
최 양의 융합활동은 점차 시를 넘어 만화,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기 시작했다. 문학작품과 일상생활 속에서 얻은 문제의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 일본소설 ‘쓰르라미 울적에’를 읽은 뒤 내용을 각색해 만화로 그렸고, TV프로그램 ‘동물농장’에서 본 ‘토끼 이야기’를 각색해 청소년 폭력의 새로운 접근법을 제기하는 영상물도 제작했다.
‘인간에게 예술은 꼭 필요하다’라는 철학 올림피아드 문제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면 예술이 필요하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캠페인을 벌인다면 ‘막아야 한다고’고 당위를 주장해선 설득하기 쉽지 않지만, 환경의 날을 맞아 포스터를 그리기 행사를 하는 등 예술을 활용하면 효과적이다’와 같이 내용을 썼다.
대상 답안의 비결은 결국 문학, 시, 만화, 영상 등 다양한 예술 활동에서 얻은 교양과 영감이 학교수업과 일상생활 속에서 얻은 문제의식과 융합됐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같은 메시지라도 그냥 글을 썼을 때보다 만화와 영상을 접목했을 때 더 힘이 있더라고요. 예술적인 가치를 활용해 사회에 영향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PD가 되고 싶어요.”(최 양)
경기 한빛중 3학년 허도 군[금상] 군사분야 호기심이 역사, 과학, 음악 등 다른 분야로 확장
허도 군의 취미는 컴퓨터 게임이다. 초등생 때는 전쟁을 주제로 한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 푹 빠져 살았다. 허 군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게임을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부모의 입장에선 ‘게임을 할 시간에 책이라도 한 권 더 읽으면 좋겠다’면서 게임과 독서는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마련. 하지만 허 군은 전쟁게임에 대한 관심을 독서로 연결했다.
“게임에서 친구들을 이기기 위한 군사전술과 병법을 알고 싶었어요. 군사전략서인 리처드 심킨의 ‘기동전’과 소설 ‘손자병법’을 찾아 읽었죠. 게임의 배경인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도 궁금하더라고요. 전쟁사를 담은 ‘20세기 결전 30장면’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10번 넘게 반복해 읽었어요.”(허 군)
게임에서 시작된 전쟁사에 대한 관심은 영화, 드라마로도 이어졌다. 허 군은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인 ‘에너미 앳 더 게이트’, ‘허트 로커’를 비롯해 미국 드라마인 ‘퍼시픽’ ‘밴드 오브 브라더스’ 등을 챙겨 봤다.
책과 영상으로 전쟁을 접하던 허 군은 승자가 없는 전쟁의 참혹한 실체를 알게 됐다. 그는 ‘전쟁은 정의로운 폭력일까?’ ‘국가 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전쟁밖에 방법이 없을까’와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전쟁 무기에도 관심이 많던 허 군은 총이 발사되는데 적용되는 물리의 원리가, 핵폭탄이 만들어지는 데 쓰인 화학의 개념을 알게 되면서 과학에도 흥미를 갖게 된다. 관심분야는 음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메탈리카’ 등 록 밴드의 가사를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다 전쟁 같은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반대하는 내용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롤링스톤스는 베트남전쟁 때 반전운동을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요.”
결국 전쟁게임에서 시작된 호기심이 역사, 과학, 음악 등 다른 분야로 확장되며 자연스럽게 ‘몰입형 융합학습’을 하게 된 것이다.
허 군은 이번 철학 올림피아드에서 출제된 ‘인간에게 예술은 꼭 필요한가?’라는 문제에 ‘예술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매개체다. 전쟁과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메시지를 후대에 남겨 비극이 반복되는 일을 막을 수 있기에 예술은 필요하다. 베트남 반전운동을 한 ‘롤링스톤스’와 기득권의 부조리함을 비판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같은 뮤지션이 대표적 예’라는 맥락으로 답안을 썼다.
“책,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 인류를 보호하는 무기를 개발하는 군사전문 공학자가 되는 꿈이 생겼어요. 전쟁을 막으려면 외교가 중요하단 사실도 알게 됐죠. 앞으론 군사학뿐만 아니라 국제정치, 외교 분야도 함께 공부해보고 싶어요.” (허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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