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2부]<1> 실눈 뜨고 운전하는 당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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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부터 2부 ‘과속’ 시리즈
치사율 35%… 과속은 ‘살인’입니다

벽을 들이받은 택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겨졌다. 택시 맨 앞부분이 운전석까지 밀려 들어올 정도로 사고 충격은 강했다. 경찰과 119구조대원이 도착했을 때 택시 운전사 홍모 씨(54)는 이미 숨져 있었다. 뒷좌석 승객 2명 중 1명은 숨지고 다른 1명은 중상을 입었다. 지난해 11월 21일 새벽 서울 중구 필동에서 발생한 사고다. 경찰은 “급가속으로 인한 충돌사고”라고 했다. 블랙박스에 기록된 택시의 당시 속도는 127km. 제한속도 60km의 두 배가 넘었다.

과속으로 인한 사고의 치사율은 35%다. 10명 중 3명꼴로 죽는다. 차량 운전자 법규 위반 항목 중 ‘달리는 기차와 부딪혔을 때’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매년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500여 건에 이르고 사망·부상자 수도 1000여 명에 달한다. 한 번에 3명 이상 사망하거나 2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대형교통사고 4건 중 1건도 과속이 원인이다.

[시동 꺼! 반칙운전] 실눈 뜨고 운전하는 당신
▼ 시속 100km선 시력 0.4… 사고땐 13층추락 충격 ▼

본보 특별취재팀은 과속할 경우 사고위험성이 얼마나 커지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1월 28일 경북 상주시 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교육센터에서 직접 실험해 봤다. 주행속도에 따라 운전자의 시야각이 얼마나 좁아지는지,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정지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봤다. 교정시력 1.2에 운동신경이 뛰어나다고 자신하는 28세 기자가 나섰다.

○ ‘과속=안경 없는 근시 운전자’

사람 사슴 자동차 등이 그려진 표지판(가로 50cm, 세로 1m) 6개를 2차로 도로 좌우에 2m 간격으로 배치한 뒤 속도에 따라 몇 개나 알아보는지 평가했다. 표지판은 차량이 10m 앞쯤 접근했을 때 올라왔다. 표지판의 위치와 그림은 매번 바뀌었다. 기자는 자신 있게 시속 60km부터 시작했다. 도심에서 60km 정도 속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냈고 운전 중 도로와 주변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한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이상하다. 빠르지도 않은데.’

몇 번을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3개 이상을 알아볼 수 없었다. 실험을 설계한 교통안전공단 하승우 교수는 “평소 시야각은 200도이지만 시속 60km로 운전할 때는 100도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라고 했다.

속도를 40km로 줄여도 4개가 한계였다. 속도를 시속 100km로 높였다. 실험 도로는 일직선이니 운전대는 붙들고만 있고 눈에 신경을 집중할 작정이었다. 표지판이 나타나자 기자는 재빨리 6개의 표지판을 눈으로 훑었다. 하지만 ‘사슴’ ‘사람’ 2개만 기억했다. 하 교수는 시속 100km일 때 시야각은 40도, 시력은 0.4로 떨어진다고 했다.

“삼각대 그림은 보셨어요?” “네? 삼각대라뇨….”

표지판 6개 중 1개에 2차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삼각대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만 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 교수는 “속도가 높으면 ‘위험’을 의미하는 삼각대도 못 알아볼 정도로 눈의 기능이 급격히 떨어진다”라며 “과속 운전자는 결국 ‘실눈’을 뜨고 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착각

시속 100km로 달리다 사고가 났을 때 충격은 13층 높이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다. 차량의 앞부분은 80cm 이상 변형되고 운전석 앞 계기판 부분도 7cm 밀려 들어와 운전자의 생명을 위협한다. 운전자가 죽거나 중상을 입을 확률이 99.9%다. 하지만 운전자 대부분은 이를 무시하기 일쑤다. 브레이크를 ‘맹신’하기 때문이다.

기자도 ‘운전 실력은 운동신경의 차이’라고 믿었다. 운전 경력은 짧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을 만나도 반사 신경을 발휘해 급브레이크를 밟아 멈추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실험 과제는 간단했다.

교통안전교육센터 고속주행코스(면적 1만5000m²)를 시속 100km로 달리다 신호가 올 때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실험 끝.

같은 구간을 세 번 넘게 돌다가 운전대를 꽉 잡았던 기자의 긴장감이 떨어질 무렵 깃발이 나타나 정지 신호를 보냈다. 꽉 조인 안전띠 때문에 가슴은 주먹으로 한대 맞은 듯 아팠고 눈에 힘을 너무 줬는지 얼얼한 느낌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고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차량이 멈춘 곳은 신호를 처음 본 지점에서 77m나 지난 자리였다. 시속 100km일 때의 실험에 쓰인 준중형 차량의 공식 제동거리는 49m지만 공주거리(운전자가 위험 상황을 발견한 시점부터 실제 브레이크를 밟은 시점 사이에 자동차가 지나간 거리) 28m까지 더해져 정지거리가 훨씬 더 늘어난 것이다. 교통안전공단 권기동 교통안전교육센터장은 “운전자들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그 자리에서 멈추거나 5m 이상 진행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불과 20km의 속도로만 달려도 상황을 인식하고 브레이크를 밟기 동안 8m 이상 더 이동한다”고 했다.

빗길과 빙판길에서 실험을 계속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속 80km일 때 한 차례만 실험하고 중단했다. 빗길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100m나 미끄러진 뒤에야 멈췄다. 통제되지 않는 2초 동안의 공포는 말할 수 없이 컸다. 시속 100km 빗길이나 빙판길 제동은 포기했다.

경찰이 3년간(2008∼2010년) 발생한 과속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과속 교통사고 가해자 10명 중 4명이 운전 경력 15년 이상이다. 경력이 많아 위험 상황을 빨리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은 운전자라도 과속 앞에서는 자신의 생명까지 쉽게 내놓고 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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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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