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한인들이 떨고 있다]<下> 인종폭력 왜… 전문가 의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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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서 사라진 백호주의, 아직도 머릿속엔…”

[호주의 한인들이 떨고있다] 인종폭력 83%가 아시아계 집중
“버스에서 뭔가 화끈거려 돌아봤더니 백인 청소년들이 내 가방에 불을 붙였더라고요.”

“차에서 갑자기 백인 5명이 우르르 몰려나와 주먹과 발로 마구 때리곤 사라졌죠.”

호주의 주요 대학 중 하나인 뉴캐슬대 한국인 유학생들이 겪은 인종폭력 사례다. 이 대학 총학생회는 8월 외국인 유학생들이 겪은 인종폭력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인 등 유학생을 노린 현지인의 범죄가 잇따르자 학생회가 나서 지난해 8월부터 1년간 피해 신고를 받아 분석한 결과다.

○ 인종폭력 피해자 82.8%가 아시아인

조사 결과 모두 163건의 인종폭력 사례가 집계됐다. 신체폭력이 40건, 언어폭력이 123건이었다. 피해자 중 한국 등 아시아계 유학생이 135명으로 전체의 82.8%에 달했다. 중동지역 출신이 20명(12.3%), 아프리카 5명(3.1%), 오세아니아 2명(1.2%) 순이었다. 유럽이나 북미 유학생은 1명씩에 불과했다.

인종차별 피해를 당해도 경찰이나 학교 당국에 제대로 신고조차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폭력 피해자의 15%, 언어폭력 피해자의 61%가 혼자 끙끙 앓다 학생회에 처음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한국인 유학생 정모 씨는 “막상 신고를 해도 별 도움을 받기 어려울 것 같아 그냥 참고 넘긴다”며 “유학비자 취소 같은 불이익을 받을까봐 폭력에 맞설 엄두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 정부 주도 다문화 정책의 한계

최근 호주에서 한국인들이 범죄 대상이 된 것은 호주 다문화 정책이 한계에 다다르고 경제 침체가 맞물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호주는 전체 인구의 4명 중 1명이 해외 출생자이고 호주에서 태어난 이민자 2, 3세까지 포함하면 인구 절반이 이민자 출신인 다민족 다문화 국가다. 하지만 호주 백인들의 다문화 인식이 미국 캐나다 등 다민족 국가에 비해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흑인을 중심으로 한 장기간의 인권운동을 통해 다문화 정책을 쟁취한 미국과 달리 호주는 국가가 정책적인 차원에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다문화 정책을 추진했다.

이용승 한국민족연구원 연구위원은 4일 “법제도로서 백호주의(백인 이외 인종 이민 제한정책)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이데올로기인 백호주의가 국민 개개인의 마음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호주 스캘런재단이 2009년 국민 4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민자나 유학생에게 반감을 드러낸 비율은 10%에 달했다. 민족이나 종교 등의 이유로 최근 1년 이내에 차별을 겪었다는 응답도 10%였다. 5.8%는 최소 한 달에 한 번 이상 인종차별을 겪는 등 지속적으로 차별받는다고 응답했다. 2005년 레바논계 무슬림 청년 집단폭행 사태나 2009년 인도 유학생 연쇄 테러는 호주 백인들이 다문화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 인종차별은 경제 위협하는 자충수

최근 호주의 경기침체도 이런 흐름을 가속시키고 있다. 호주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원자재 수요가 감소하면서 자원 부국으로서 입지가 축소되는 등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곽재석 이주동포정책연구소 소장은 “경기침체로 자국민의 실업은 느는데 교육열이 높은 한국 등 아시아인들은 전문직 종사자가 많아지면서 애꿎은 한인 이민자나 유학생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학 및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호주 경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자국 경제의 ‘큰손’인 아시아 고객을 잃게 되는 자충수가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호주 정부가 최근 일련의 한인 폭행 사건에 대해 “인종범죄로 볼 근거가 없다”는 시각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인 유학생은 중국(15만9691명)과 인도(7만2801명)에 이어 2만9933명으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 호주 유학 비용으로 지출하는 돈만 연간 16조 원에 이른다.

시드니=박희창 기자·신광영·장선희 기자 ramblas@donga.com
#호주#한인#인종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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