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간 50m 땅굴 뚫어 송유관 턴 ‘도둑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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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수평계까지 동원… 넉달간 73억원어치 훔친 일당 5명 구속-11명 수배

5월 22일 경북 김천시 아포읍의 한 셀프주유소. 느닷없이 ‘수리 중’이라는 푯말이 설치됐고 안을 확인할 수 없도록 안전펜스가 둘러 세워졌다. 주유소를 14억 원에 매입한 정모 씨(34) 등 5명은 다른 주유소보다 기름값을 비싸게 책정해 손님이 오지 않도록 했다.

그러고는 지하 1m에 묻혀 있는 저유탱크 안으로 들어가 삽과 곡괭이로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이들의 목표는 인근에 매설된 송유관. 정확하게 뚫기 위해 레이저 수평계와 지하 공기를 정화하는 장치까지 동원했다. 차량이 많이 다니는 4차로 도로 아래인 것을 감안해 나무 버팀목을 양쪽으로 설치했고 파낸 흙을 신속하게 밖으로 꺼내기 위해 갱도 바닥에 레일까지 설치했다. 폭 1m, 높이 1m의 땅굴을 3개월 동안 판 끝에 송유관까지 50여 m를 연결했다.

정 씨 등은 이 송유관에 구멍을 뚫은 뒤 유압호스로 주유소 저유탱크와 연결해 기름을 빼냈다. 8월부터 11월 말까지 훔친 기름은 휘발유 및 경유 400여만 L(시가 73억2000여만 원)에 달했다. 범행을 들키지 않기 위해 훔친 기름은 탱크로리에 담아 서울, 경기지역의 주유소에 L당 150∼200원 싸게 팔아치웠다. 주유소 저유탱크가 훔친 기름의 양을 감당하지 못하자 또 다른 주유소를 임차해 기름을 보관했다.

완전범죄일 것 같았던 이들의 행각은 주유소 운영이 들쑥날쑥한 점을 이상하게 여긴 한 시민의 신고로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경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4일 대한송유관공사 송유관 기름을 훔친 정 씨 등 5명을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이들이 훔친 기름을 사들인 혐의(장물 취득)로 주유소 업자 등 8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달아난 11명을 쫓고 있다. 이들 중에는 송유관 절도 전과자도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수익금을 분배할 때 누가 얼마나 역할을 했는지를 정확히 하기 위해 땅굴 파는 과정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동영상 촬영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들은 훔친 기름을 종류별로 분류하거나 저장하는 역할, 운반책, 주유소 사장 등으로 역할을 분담했다”며 “범행에 사용한 장비와 불법 수익금 중 1억 원을 압수했다”고 말했다.

[채널A 영상] 땅굴 파려고 전문 장치까지 동원해…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송유관#셀프주유소#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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