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점위기 서울 신촌 홍익문고 지켜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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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에 담긴 목소리 ‘서점이 아닙니다 첫사랑입니다’

고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 ‘그 남자네 집’에는 ‘사치였다. 시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암울했던 6·25전쟁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건 원한이나 이념이 아니요, 사치와 시 덕분이라는 뜻이다. 주인공은 가난에 찌든 생활 속에서도 연인과 시 한 수 나누는 ‘작은 사치’를 부리며 위안을 찾아나간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 번화가 한복판을 53년째 지키는 홍익문고가 누군가에겐 ‘사치’로 비칠지 모른다. 더 많은 수익을 버리고 책을 팔기 때문이다. 대기업 부장 자리를 내놓고 창업주인 아버지 고 박인철 대표에 이어 홍익문고를 이끌고 있는 박세진 대표(44)의 고집도 사치다. “구청의 계획대로 순순히 서점을 허물고 재개발 하면 현재 서점 수입의 2∼3배를 임대료로 받을 수 있는데 웬 고집이냐”는 주변의 말도 한 귀로 흘린다.

홍익문고를 지키기 위해 나선 사람이 4600명에 이른다.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홍익문고를 드나들며 총장까지 지낸 노교수, 커피 살 돈도 없어 책방을 아지트로 삼았던 시인, 첫사랑을 만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식당 주인…. 이들에게 홍익문고는 ‘사치’이고 ‘시’였다.

23일 오후 찬 바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홍익문고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재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이날 “지역 서점을 내몰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하나 둘 사라지는 추억의 공간을 붙잡으려는 이들의 목소리는 정말 사치일까.

조건희·박희창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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