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얘기만 나오면 가슴이 뛰죠? 그게 우리의 魂입니다”

  • 동아일보

■ 김관용 경북도지사 인터뷰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19일 경북도지사실에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지역 및 국가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김 지사는 
“우리의 혼과 얼인 정체성을 시대에 맞도록 재창조해야 건전한 경쟁과 조화를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19일 경북도지사실에서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지역 및 국가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김 지사는 “우리의 혼과 얼인 정체성을 시대에 맞도록 재창조해야 건전한 경쟁과 조화를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국민의 신바람 속에 대선이 치러져야 하는데 무척 아쉽습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는 19일 “맥이 빠진 듯한 대선 과정을 보면서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달 시도지사협의회장으로 선출된 뒤 서울과 지방 곳곳을 다니다 보니 이 같은 생각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말했다. 이날 경북도청 집무실에서 만난 김 지사는 “‘대한민국호’ 선장을 선출하는 대통령선거가 이름값을 못하고 초라해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그는 “국민의 가슴이 뛸 정도로 미래 에너지가 뿜어 나오는 치열한 대선이 돼야 하는데 도무지 와 닿지 않는다”며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파고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험로를 헤치고 항해해야 할 든든한 선장이 과연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 ‘우리의 혼’에 대한 절실함

김 지사는 대선이 맥 빠진 이유에 대해 ‘우리를 지탱해 온 정신이나 혼에 대해 후보들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학교폭력 등 삭막해지는 교육 현장이나 희망을 찾지 못하고 삶을 버리는 자살이 늘어나는 현실 또한 혼이라는 구심점을 우리가 잃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거창하고 추상적인 공약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 그는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대선에서 맥이 빠지는 것은 결국 국가의 정체(正體)를 알 수 없는,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신바람 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그의 처방은 무엇일까.

김 지사는 2006년 민선 4기 단체장으로 취임하면서 ‘경북 정체성’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경북만의 정체성이 아니라 여러 지역 정체성이 모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일으켜 세우는 넓은 토대를 구상했다. 그는 “얼, 혼, 정성, 유전자(DNA)라고 할 수 있는 정체성을 나침반 삼아 나아가지 않으면 방향을 잃고 자신감도 갖기 어렵다”며 “단체장이든 대통령이든 지역과 국가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이를 위한 에너지는 어떻게 모아야 하는지 절박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경북의 역사와 전통에서 건져 올린 화두는 △신라정신(화랑풍류정신) △선비문화 △호국정신 △새마을운동 정신 등 4개. 지난해 말에는 전문가 60여 명이 참여한 ‘경북정체성포럼’을 출범시켜 본격적인 재조명에 나섰다.

―지금 정체성을 말하는 이유는….

“선거에 나오는 후보들은 거의 예외 없이 국민과 주민을 외친다. 개인적 경험이지만 주민(국민)이 진짜 ‘하늘’이라는 걸 구체적이고도 절실하게 느끼는 데 20년 걸렸다. 단체장을 5선(경북 구미시장 3선, 경북도지사 2선)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온갖 고민과 쓴맛, 보람을 겪으면서 ‘아, 정말 우리 국민정신 속에 오랫동안 피와 살로 흐르는 맥이 있구나’ 하는 것을 손에 쥘 듯 알게 됐다. 대통령이든 단체장이든 이런 ‘맥’을 되살리고 국민 마음에 불을 댕기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대들보만 세우면 힘이 솟는다. 한번 잘해 보자는 의욕도 절로 생긴다. 우리 역사가 그걸 증명해 주지 않나. 이런 게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주인 역할을 하며 미래를 열어가는 데 가장 강력한 사회적 자본이 돼야 한다.”

―왜 신라와 선비, 호국, 새마을운동인가.

“지역마다 고유한 정서가 있고 빛나는 전통도 있다. 그 속에는 비슷한 것, 차이 나는 것, 긍정적인 요소, 부정적 측면 등이 뒤섞여 있다. 긍정적 요소를 최대한 뽑아내 오늘을 비추고 내일을 여는 에너지로 삼겠다는 강한 의지와 자세가 중요하다. 신라 선비 호국은 경북과 관련되는 부분이 많아 이를 지역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열쇠로 만들어 보려는 것이다. 경북의 정신으로만 한정하는 그런 좁은 관점도, 과거 타령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경쟁과 성과 추구도 신바람을 일으키는 정체성을 딛고 설 때 서로 힘이 되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신라정신 등에는 이를 위한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잠재력이 녹아 있다.”

○ ‘한번 신나게 해보자’는 신바람 절실

―지금 현실과 어떻게 접목할 수 있나.

“정체성이라 하면 얼핏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 수도 있다. 21세기 첨단디지털시대에 무슨 신라풍류화랑이며 선비정신인가 하는…. 하지만 그렇지 않다. 통일국가를 이룬 신라의 저력이나 옳음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는 선비정신, 항일독립운동과 6·25전쟁 때 낙동강 방어, 보릿고개를 이긴 정신 등은 물론 지난 일이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정신과 영혼, 정체성은 불후(不朽), 즉 썩지 않았고 썩을 수도 없는 것이다. 독도 수호라면 너나없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국민 마음속에 ‘마땅함’을 목숨처럼 여기는 선비정신이 흐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처음엔 무모하게 보였던 포항제철소와 구미전자공단은 결국 나라를 먹여 살리는 역군으로 성장했다. 이런 게 우리의 혼이고 정체성의 힘 아닐까. 역사를 만들어 온 국민의 저력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1년 동안 어떤 성과가 있었나.

“적잖은 논쟁이 있었고 앞으로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이런 논쟁 과정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신라정신이나 선비문화, 호국정신을 맹목적으로 확산하려는 게 아니다. 신라정신이나 선비문화에도 버려야 할 것과 계승해서 더욱 발전시켜야 할 게 있다. 그런 것을 가려내 우리의 힘과 에너지로 만들어야 한다. 논쟁이 치열해질수록 더 빛나고 다듬어진 보석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정체성은 고정된 게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 아닌가. 이런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경북이 앞장서서 새롭게 증명해 보려고 한다. 전국적으로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더욱 좋을 것이다.”

―편 가르기 식 지역주의 해소에도 정체성이 도움이 될 수 있나.

“선거 때면 망국적인 지역주의가 불거지고 이를 탓하는 지적도 많이 나온다. 나는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삶과 치열한 논쟁 같은 전통에 귀 기울이며 우리를 돌아보는 자세도 현실적 처방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일종의 정체성 차원의 해결책이다. 경북의 퇴계와 전남의 고봉이 사람의 심성에 관한 논쟁을 시작했을 때가 퇴계는 60대, 고봉은 30대였다. 나이와 세대, 직위, 지역 같은 칸막이는 전혀 없었다. 요즘은 무슨 논쟁이 벌어지면 편 가르기와 싸움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퇴계와 고봉은 전혀 달랐다. 두 사람이 10여 년 동안 서로 존중하며 논쟁하는 품격 높은 모습은 정말 뭉클하다. 퇴계가 숨지기 1년 전 선조에게 나라를 위한 인재로 추천한 인물도 바로 고봉이었다. 이게 선비정신이요 공심(公心)이다. 당시 안동에는 퇴계의 제자가 많았다. 이런 태도가 너무 없으니까 지역주의에 기대서 영합하려는 사심(私心)이 생기지 않겠나. ‘지금 우리가 그때보다 발전했을까’ 하고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 ‘온고지신’이 진정한 국력

―이스탄불 문화엑스포도 정체성의 힘인가.

“그렇다. 신라정신의 계승과 발전이다. 정체성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든든한 끈이다. 유교 불교 도교 같은 외래사상이 신라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이유도 최치원이 제시한 풍류(風流)의 토양에서 가능했다. 그의 국제적 개방성을 보여주는 인무이국(人無異國· 사람에게는 다른 나라가 없음) 정신, 장보고의 해양 개척, 혜초 스님의 문명탐험정신 등은 신라의 정체성이다. 신라 때는 이슬람과도 교류가 활발했다. 세계 최고 최대의 문화역사관광도시인 터키 이스탄불도 처음에는 경북 경주와 공동 개최를 매우 꺼렸다. 서울이면 모를까 격이 맞지 않는다더라. 하지만 결국 해냈다. 이런 게 바로 정체성에서 나오는 문화의 힘이고 풍류정신이다.”(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내년 8월 31일∼9월 22일 이스탄불에서 열린다. 2006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열린 경주엑스포 이후 두 번째 해외문화엑스포다.)

―시대정신이 있는지 없는지 혼란스럽다.

“바로 그런 점도 정체성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대선 같은 정치뿐 아니라 교육과 기업, 일상생활 등 모든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지탱해 온 가치가 많이 해체되면서 새로운 방향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답답해하는 건 아닐까. 나부터 이런 데 갈증을 많이 느낀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역사와 전통을 자화자찬하며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게 아니다. 새 출발의 계기를 전통의 힘에서 찾아보자는 것이다. 독도를 떠올리면 언제나 가슴이 쿵쾅거린다. 이런 가슴 뜀이 답이다. 경북이 앞장서서 대한민국의 그런 정체성을 세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싶다.”

김 지사는 ‘지방 살리기’ 의욕이 강하다. 구미시장이던 1999년에도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의장을 맡아 경험도 쌓았다. 광역단체장이던 2006년에는 시도지사들과 함께 ‘지방균형발전협의체’를 결성해 초대 회장으로 활약했다.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확고한 신념에서다.

―지역 정체성과 지방 살리기는 어떤 관계가 있나.

“이번 대선에 지방 살리기, 즉 지방 분권을 통해 균형 발전을 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부족하다. 지방 분권은 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량을 끌어올리려는 거시적 안목에서 강조하는 것이다. 현재 대통령 자문기구로 돼 있는 지방분권촉진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지방의 위상을 높이는 중앙행정기관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지방 분권과 지방 살리기, 이를 통한 국가 발전도 결국 국민의 자신감과 신바람 위에 서야 놀라운 결실을 거둘 수 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독도#김관용#경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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