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하기만 했던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인문학을 통해 이웃간의 정을 살리는 모임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18일 부산 해운대구 우2동 센텀시티 주민들이 정권섭 전 동서대 총장을 초빙해 인문학 관련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 해운대구청 제공
“인문학 강좌가 주민들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고층 건물과 고급 아파트가 밀집한 부산 최고 주거지이자 첨단도시인 해운대구 우2동 센텀시티 주민들이 닫혔던 마음을 열고 있다. 최근 해운대에서 일기 시작한 인문학 열풍이 아파트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
이곳에는 부산시가 2000년 ‘첨단미래도시 건설’을 기치로 내건 뒤 벡스코와 세계 최대 쇼핑몰인 신세계 센텀시티, 고층 아파트가 잇따라 들어섰다. 그러나 아파트마다 보안요원이 배치되고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는 보안시스템이 설치돼 분위기가 삭막했다.
그러던 중 올해 초부터 주민들 사이에서 “정이 있는 마을을 만들어 보자”며 소모임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센텀시티아파트연합협의회, 센텀시티지역발전협의회, 부녀회 등이 주민센터와 소통을 시작했다. 여기에 우2동 주민센터가 8월부터 인문학 강좌를 하면서 변화를 이끌었다. 주민센터는 주민 20명만 모이면 ‘찾아가는 인문학 향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지난달 18일에는 정권섭 전 동서대 총장을 초청해 디자인센터에서 ‘센텀, 완전한 시민사회를 꿈꾸다’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아파트 입주자대표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정 총장은 “고급 주택가였던 뉴욕 할렘이 슬럼지역으로 전락한 것은 시민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해운대가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시민의식 성장과 사회 참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날 함께 열린 문정숙 해운대구 세계시민사회센터장(63)의 자원봉사활동 특강이 끝난 뒤에는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 나서려는 주민들이 줄을 이었다. 임정희 센텀새한센시빌아파트 부녀회장(53)은 “인문학 강연이 주민들이 이웃과 지역사회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센텀센시빌아파트 주민 50여 명은 9일 아파트 인근 하천 정화활동을 펼쳤다. 최근 롯데갤러리움센텀에서는 사랑방 좌담회가 열려 이웃 간의 벽을 허물기도 했다. 아파트연합협의회도 연말에 어떤 식으로 기부·봉사활동을 할지 고심하고 있다. 정주섭 센텀시티아파트연합협의회장(52)은 “도시 명성에 걸맞게 앞으로 지속적이고 폭넓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해운대구는 세계일류도시를 목표로 7월 ‘인문사회자본팀’을 신설했다. 이후 동서양 인문학 산책, 찾아가는 권역별 인문학 강좌, 구청장과의 인문학 소통, 길 위의 인문학 등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숨은 지역 이야기 발굴, 인문해설사 양성, 인문학 축제 및 인문학 북페어 페스티벌도 계획하고 있다.
신뢰, 협력, 소통을 토대로 선진시민과 선진사회의 자격 요건인 사회적 자본 확충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달에는 사회적 자본 증진 조례를 만들었다. 곧 전문가 25명으로 사회적 자본 자문위원회도 구성한다. 내년 1월에는 사회적 자본 높이기 범시민운동본부도 설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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