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1호인 대구 측백나무 숲 내의 측백나무 3그루가 무단으로 잘려나갔다.대구
동구는 “가지치기 정도”라고 해명했지만 몸통까지 잘렸음을 알 수 있다. 대구 동구 제공
4일 대구 동구 도동 측백나무 숲. 주변은 붉고 노란 가을빛이지만 이 숲은 푸른빛을 잃지 않고 의연한 모습이다. 암벽으로 이뤄진 향산(香山)과 하천인 불로천(不老泉)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의 측백나무는 산 중턱 높이 50여 m 바위에도 뿌리를 내려 자라고 있었다. 수백 년 자리를 지켜온 나무의 생명력에 고개가 숙여지는 곳이다.
이 숲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연기념물이다. 측백나무 자생지로는 가장 남쪽에 있는 군락지인 데다 쓰임새가 귀중한 나무라는 이유 등으로 1962년 천연기념물 1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동아일보 취재 결과 이 숲의 측백나무가 최근 무단으로 훼손된 사실이 드러났다.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대구 동구가 9월 숲 유지보수 공사를 하다가 측백나무 세 그루를 자른 것이다. 산 중턱에 자리한 구로정(九老亭)이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측백나무 숲과 같은 천연기념물의 경우 특정한 이유로 나무를 베고자 할 때는 반드시 문화재청에 현상변경 허가 신청을 해야 한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심의를 통해 허가를 해야만 자를 수 있다.
하지만 동구는 이 절차를 밟지 않고 무단으로 자른 것으로 확인됐다. 2일 뒤늦게 문화재청 앞으로 관련 사실을 알리는 공문을 보냈다. 동구 관계자는 “이 정도 자른 것은 ‘가지치기’라고 생각했다. 공사 시행업체도 ‘나무가 다시 자라는 데 지장이 없도록 방부약제를 바르고 사후조치를 잘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조운연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서기관은 “측백나무 숲 같은 천연기념물 중 식물 군락의 경우 간단한 가지치기와 잡목 제거 등은 관할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할 수 있지만, 나무를 자를 때는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5일 현장 실사를 통해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한 뒤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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