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앵무새 대통령, 왕국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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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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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매출 1500만원 농장 정리… 앵무새 숲 만들기 위해 美연수 떠나는 김승수 씨

앵무새는 비슷해 보여도 각기 개성이 다르단다. 노래를 잘하는 앵무새가 있고, 발음이 더 또렷한 앵무새도 있고…. 간단히 한마디 해 달랬더니 1시간 넘게 예찬론이 쏟아졌다. 결국 중간에 말을 끊고 말았다. 김승수 씨(사진)는 “앵무새만 생각하면 흥분이 돼서”라며 수줍게 웃었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앵무새는 비슷해 보여도 각기 개성이 다르단다. 노래를 잘하는 앵무새가 있고, 발음이 더 또렷한 앵무새도 있고…. 간단히 한마디 해 달랬더니 1시간 넘게 예찬론이 쏟아졌다. 결국 중간에 말을 끊고 말았다. 김승수 씨(사진)는 “앵무새만 생각하면 흥분이 돼서”라며 수줍게 웃었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 흰 도복이 땀에 흥건히 젖었다. 커다란 체격에 앳된 얼굴. 소년의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훈련이 고돼서가 아니었다. 얼마 전 죽은 강아지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원래 동물을 좋아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길거리에 버려진 동물을 보면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개, 고양이 가릴 것 없이 집에 데려왔다. 엄마 몰래 옥상에서 키웠다.

한 푼이라도 용돈을 받으면 우유부터 사서 먹였다. 그렇게 아끼던 강아지가 병으로 죽었으니….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슬픔이 아픔이 됐다. 어린 가슴에 생채기가 생겼다.

며칠 동안 입맛도 없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걸었다.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작은 애완동물 가게 앞. 구석에 있던 새가 눈에 들어왔다.

회색빛을 띤 손바닥만 한 새. 가게 앞에 서서 몇십 분 동안 바라봤다. 앵무새와의 첫 만남. 이땐 몰랐다. 그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
앵무새에 미치다

화려한 빛깔에 깜찍한 외모. 김승수 씨가 특히 좋아한다는 카카리키(왼쪽)와 뉴기니아 앵무새를 손에 들어보였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화려한 빛깔에 깜찍한 외모. 김승수 씨가 특히 좋아한다는 카카리키(왼쪽)와 뉴기니아 앵무새를 손에 들어보였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머릿속에 그때 본 왕관앵무새가 자리 잡았다.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한 쌍을 샀다. 30만 원이란 거금을 주고. 애지중지 키웠다. 1년쯤 지났을까. 앵무새가 새끼를 4마리 낳았다. 별생각 없이 2마리를 가게에 갖고 갔다. 주인은 40만 원을 손에 쥐여줬다. 눈이 번쩍 뜨였다. 좋아하는 동물을 기르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니….

소년은 사실 하고 싶은 걸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억지로 했다.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중3 때 유도를 시작한 이유다. 운동에는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쏟을 만큼 즐겁지 않았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건 이때가 처음. 심장이 쿵쾅거렸다.

말 그대로 앵무새에게 미쳤다. 자료를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성에 차지 않았다.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만큼 충분한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앵무새 유랑’에 나섰다. 앵무새를 기르는 사람을 다 찾아가 보기로 작정했다. 쉽진 않았다. 매일 합숙하는 유도부 특성상 토요일 오후에서 일요일 오전까지가 가능한 시간이었다. 친구들은 밀린 잠을 잔다고, 놀겠다고 했다. 소년은 노트와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앵무새 브리더(앵무새를 기르고 분양도 하는 사람)를 찾아 나섰다.

브리더들은 까다로웠다. 핵심 노하우를 꽁꽁 숨겼다. 난관을 어떻게 타개할까. 고심 끝에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젊은 피’ 전략. 앵무새를 정말 좋아하는 어린 학생이라면서 동정심에 호소했다. 다른 하나는 ‘바보’ 전략. 기본적인 지식조차 모르는 척하면 상대방이 경계를 해제하고 노하우를 풀어놓았다.

1년쯤 지났다. 고3이 됐을 무렵이다. 국내에서 자기만큼 앵무새를 아는 사람이 드물게 됐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 됐다. 좀 더 벌여 보자고.

중저가 앵무새 몇 마리를 기르는 수준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고가의 앵무새를 기르자고 마음먹었다. 베란다를 개조해 수를 늘렸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게 루비노장미라는 고급스러운 앵무새. 비싼 가격이 문제였다. 280만 원.

어떻게 살까 고민하는데 이모가 입원했다. 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원래 정이 많던 소년은 유도 합숙소에서 하루 ‘휴가’를 얻을 때마다 병원을 찾았다. 이모의 다리를 주물러줬다. 대가를 바라지는 않았다. 어느 날 이모가 물었다. “뭐 가지고 싶은 거 없니?” 머리에서는 무리한 부탁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대답이 튀어나왔다. “앵무새요.” 이모는 가격을 듣고 크게 놀랐지만 간절한 눈빛을 읽었는지 지갑을 열었다. 결국 원하던 앵무새를 얻었다.

좌절, 그때 찾아온 친구

소년은 베란다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 거실의 TV와 연결했다. TV 화면에 24시간 앵무새가 등장했다. 어머니는 가끔 말했다. 무슨 ‘동물의 왕국’을 찍느냐고. 소년의 귀엔 이런 말이 들리지 않았다. 오직 앵무새만 보였다. 몇 개월이 지나 앵무새가 번식했다. 이 장면을 화면으로 직접 봤다. 소름 끼치는 감동.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루비노장미는 새끼를 5마리 낳았다. 인터넷으로 분양해 480만 원을 벌었다. 어머니한테 모두 드렸다. 부모가 든든한 지원자가 됐다.

고교를 졸업하고 청년이 됐다. 일을 더 벌였다. 국내에선 보기 드물게 앵무새 농장을 직접 만들었다. 앵무새를 분양해서 번 돈에 주말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받은 돈을 합쳤다. 땅을 사고 사육장을 만들었다.

원하는 대로 모두 이룰 듯했다. 자만심이 꿈틀거렸다. 국내 최고 앵무새 전문가가 됐다는 생각에. 이때였다. 앞만 보고 달려온 그가 처음으로 좌절한 시점이.

도라지앵무새를 80만 원 주고 사서 길렀다. 새끼를 분양했지만 20만 원도 못 받았다. 처음 살 때보다 더 좋은 종(種)이 나왔다. 이런 일이 반복됐다. 자신감이 꺾였다. 의욕이 사라졌다. 예전처럼 즐겁지 않았다. 그냥 그만둘까….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무렵, 앵무새 한 마리가 들어왔다. 태어날 때부터 발가락에 장애가 있었다. 어떤 과거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사람을 무서워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이 갔다.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산에 있는 나무를 갖고 와서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새장에 넣는 대신 항상 곁에 두고 지냈다. 4개월쯤 지났을까.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앵무새가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애교를 부렸다. 그에게 다가와 비비고, 아침마다 “안녕”이라며 반갑게 인사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제부턴가 내가 앵무새와 함께 있을 때의 행복함을 잊고 지냈구나.

앵무새를 만났을 때의 기쁨을 되찾으니 자신감이 다시 붙었다. 단순히 앵무새만 알아선 부족하다고 생각해 시장 현황을 공부했다. 마케팅 관련 서적을 사서 읽고, 저자를 찾아갔다.

부산에서 살던 그는 대학 2학년 때 의경으로 군복무를 하기 위해 서울로 갔다. 남들은 가장 고되다는 시위 진압. 그의 눈엔 기회가 보였다. 시위 진압을 위해 동원되는 곳에 가기 전, 근처에 앵무새 키우는 곳이 있는지 알아봤다. 시간 날 때 찾아가 앵무새를 분양할 거래처를 뚫었다.

시장도 적극적으로 개척했다. 카카리키란 앵무새가 있었다. 100만 원이 넘던 새가 당시 1만 원 아래로 떨어졌다. 앵무새를 기르는 유행이 관상조(새장에서 애완용으로 키우기에 적당한 조류)에서 애완조(곁에 두고 기르는 조류)로 바뀌면서였다.

애완조로 바꿀 순 없을까. 그는 우선 전국에서 구할 수 있는 카카리키를 다 사들였다. 어떤 브리더는 모이 값도 안 나온다며 거저 줬다. 이때부터 카카리키를 애완조로 만드는 방법을 찾았다. 번식 장소와 기간, 모이 종류, 모이 주기 등 모든 방법을 다 시도했다.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성공. 가지고 놀 수 있는 새로 만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홍보했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바로 팔지 않았다. 마리당 15만 원 이상으로 오르자 분양했다. 그렇게 1년 동안 카카리키로 2억 원을 벌었다.

꿈은 아직 현재진행형

동서대 경호학과에 다니는 김승수 씨(24) 얘기다. 지난해 1월 제대한 그는 앵무새 사업이 잘되자 농장을 2개로 늘렸다. 한 달 매출은 1500만 원을 훌쩍 넘겼다. 인건비를 들이지 않는 데다 사료값도 거의 나가지 않으니 대부분의 매출이 순이익으로 직결됐다.

그런데 올해 6월, 그는 번창하던 농장을 통째로 팔았다. 미국에 가기로 결정한 뒤였다. 학교는 해마다 100여 명을 뽑아 1년가량의 미국 연수를 지원한다. 그는 ‘앵무새 선진국’ 미국에서 다양한 앵무새를 만나고, 기르는 노하우를 배우고 싶었다. 문제는 영어 실력이었다. 학점도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꿈만 믿고 총장실 문을 두드렸다. 1시간 넘게 앵무새 스토리를 얘기했다. 문을 나서는데 장제국 총장이 말했다. “이 정도 꿈과 열정이면 어딜 가도 성공할 수 있을 게다.” 자신감을 얻고 자기소개서를 냈다. 미국 연수 명단에 이름이 올라갔다.

그는 나이에 비해 땅에 관심이 많다. 지금까지 번 돈으로 200평(약 661m²) 넘는 땅을 사놓았다. 이유를 물었다. 차분한 대답이 돌아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났어요. 갑자기 허름한 집에 옹기종기 모여 살게 됐죠. 어린 마음에 너무 부끄러웠어요. 친구들이랑 집에 갈 땐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갔죠.” 말을 이었다. “아버지께선 정말 악착같이 일했어요. 제가 중3이 돼서야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죠. 이젠 그때처럼 힘든 일이 닥치면 제가 나설 겁니다. 제 땅에 큰 집을 지어드리려고요.”

땅에 집착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앵무새 숲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귀여운 앵무새가 산책하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장면, 상상만 해도 두근거리지 않아요?”

승수 씨와의 마지막 인터뷰는 12일에 했다. 그가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이었다. 기사로 쓰겠다면서 앵무새 대통령이란 말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그는 과분하다면서 또 다른 꿈을 얘기했다. “외로운 홀몸노인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싶어요. 앵무새는 대화가 가능하고 애교를 잘 떨어요. 또 오래 살고 키우기가 쉬워요. 그분들에게 새로운 손자를 안겨주고 싶습니다.”

이 학생. 참 순수하고 기특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앵무새#김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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