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불만인 무상보육, 대안은 없나]<上>엄마들도 “이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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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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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애도 어린이집 이용 부추기는 무상보육… 엄마 70% “불만”

《 정부가 올해부터 만 0∼2세 영유아에 대해서도 부모의 소득에 관계없이 보육시설에 맡길 경우 보육료를 전액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하면서 빚어진 ‘보육대란’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는 서울, 경기와 6개 광역시에 거주하는 영유아 부모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와 국내외 취재를 통해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3회에 걸쳐 관련 기사를 게재한다. 》
○ “부모에게 선택권을”

어린이집 이용 급증해… 서울 종로구 무악동 인왕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정부의 보육시설을 통한
 무상보육 지원이 확대되면서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만 0∼2세 영유아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정작 아이를 맡길 곳이 꼭 필요한 
맞벌이 가정이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못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동아일보DB
어린이집 이용 급증해… 서울 종로구 무악동 인왕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정부의 보육시설을 통한 무상보육 지원이 확대되면서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만 0∼2세 영유아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정작 아이를 맡길 곳이 꼭 필요한 맞벌이 가정이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못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동아일보DB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가 여론조사 기관인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만 0∼5세 자녀를 가진 여성 1529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7명(70.3%)은 현행 제도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답했고, 6명(60.6%)은 현행 무상보육 정책이 아이의 특성에 맞는 교육 선택권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가량(49.5%)은 현행 무상보육 정책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제 보육료와 양육수당의 지급 대상과 차이를 알고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4.8%에 불과했다. 10명 중 8명 정도(77.7%)는 복잡한 현행 제도보다는 부모에게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보육료를 지원받을 경우 새로운 형태의 교육 프로그램을 찾겠다는 응답자도 81.6%나 됐다.

문진영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제도가 너무 복잡하고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전문가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며 “특히 보육료는 보육시설을 통해 지원하기 때문에 정책에 대한 체감도 역시 크게 떨어진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현재 이용 중인 보육시설에 대한 만족도(35%)는 제도 자체에 대한 만족도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만 0∼2세 영유아 138만여 명 중 34%인 약 47만 명은 보육시설도 이용하지 않고 소득 하위 15%에 주는 양육수당도 받지 못해 무상보육의 ‘사각지대’에 있다. 전국 농어촌 지역 1416개 읍면 중 426개 지역에는 아이를 맡길 만한 보육시설 자체가 아예 없는 실정이다.

○ “세대 간 단절 부추겨”

대기자 수만 수백명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사는 한 아이의 부모가 어린이집 등록 신청을 하기 위해 서울시 보육포털서비스를 이용하는 모습. 집 근처 세 곳의 어린이집 대기자가 각각 238∼442명에 이른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대기자 수만 수백명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사는 한 아이의 부모가 어린이집 등록 신청을 하기 위해 서울시 보육포털서비스를 이용하는 모습. 집 근처 세 곳의 어린이집 대기자가 각각 238∼442명에 이른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성급한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당초 정부와 정치권은 만 2세 이하 영아는 시설에 맡기는 부모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부모들 사이에 시설에 아이를 맡기지 않으면 손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만 2세 이하 영유아가 지난해 65만 명 수준에서 올해 6월 말 현재 78만여 명으로 크게 늘었다. 보육시설 이용률이 5∼10%포인트만 더 높아져도 내년에는 9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보육시설 이용이 꼭 필요한 맞벌이 부부 등이 정작 아이를 맡기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지면서 일부 ‘워킹맘’은 “이런 무상보육이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얘기까지 하고 있다.

차일드케어그룹 정용민 대표는 “현행 무상보육 정책은 지원 주체인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이고 수혜자인 부모와 영유아 모두 불만스러운 제도”라며 “특히 부모의 자녀 교육 결정권과 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만 0∼2세 영유아의 보육시설 이용률은 지난해 50% 안팎에서 올해 4월 말 57%까지 치솟아 덴마크, 스웨덴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3위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여성 취업률은 한국(약 30%)의 두 배가 넘는 70%대다. OECD는 만 2세 이하 영유아는 부모와의 관계 형성을 위해 가능하면 가정에서 양육하는 게 바람직하며, 시설 이용은 30% 미만이 적정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동아일보 기고를 통해 “충분한 검토 없이 급조된 현행 무상보육 체계는 부모의 역할과 선택권을 제한해 아이와의 세대 간 단절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 “보다 정교한 제도 마련 시급”


정치권의 갑작스러운 무상보육 확대로 인해 올해 지방자치단체가 추가 부담해야 하는 예산은 6600여억 원이다. 서울 서초구는 이미 예산이 고갈됐으며, 지난달 신용카드사에 내야 할 보육료를 내지 못해 카드사에 대납을 요청하기도 했다. 서초구를 시작으로 9, 10월 지자체 보육예산 고갈 사태는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인다. 이 때문에 지자체에서는 수요 예측을 잘못한 중앙정부에 전액 부담을 요구하고 있으나 중앙정부 역시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치권의 ‘선심성’ 정책으로 중앙정부도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전체 보육시설의 90%를 차지하는 민간 보육시설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는 5월 보육료 인상과 규제 완화를 요구하며 복지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이여진 아동보육담당 조사관은 최근 발표한 ‘영아 무상보육 재정의 문제점과 향후 개선 과제’에서 “모든 영유아에게 종일반 보육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일률적인 종일제 보육 지원은 불필요한 시설 이용으로 예산 낭비, 아동 발달 저해, 부모 책임 회피 등 부작용을 초래하고, 취업모와 전업주부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여론조사 어떻게 했나

이번 조사는 지난달 17일부터 2주간 글로벌리서치가 서울, 경기와 6개 광역시에 거주하는 만 0∼5세 자녀를 둔 여성 1529명을 대상으로 일대일 면접(1000명)과 온라인(529명)을 통해 실시했다. 조사 대상은 지역별, 연령별로 임의 추출해 이 중 조사에 적합한 대상자를 최종 선정했다. 조사 대상은 △25∼29세 △30∼34세 △35∼39세로 나눠 각각 추출했으며, 월 소득 수준은 △300만 원 미만 △300만∼399만 원 △400만∼499만 원 △500만 원 이상 등 고르게 분포돼 있다. 조사 대상자의 60%가량은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있으며, 30%가량은 보육료나 양육수당을 지원받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가정에서 직접 양육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7.6%였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무상보육#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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