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의사가 ‘포괄수가제’ 비판… 환자들 “불안”

  • 동아일보

■ 시행 첫날 의료현장엔 포괄수가제 비난 안내문

포괄수가제가 전면 실시된 2일 서울 은평구 신사동의 한 병원에 반대 포스터가 붙어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포괄수가제에 반대하는 이 포스터를 전국 병의원에 배포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포괄수가제가 전면 실시된 2일 서울 은평구 신사동의 한 병원에 반대 포스터가 붙어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포괄수가제에 반대하는 이 포스터를 전국 병의원에 배포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포괄수가제 때문에) 좋은 항생제·영양제를 선택할 수 없다. 수술 중 응급을 요하는 추가 수술이나 필요한 약을 투입하는 걸 선택할 수 없다. 간염 에이즈 매독을 방지하기 위해 일회용 수술포를 사용하도록 선택할 수 없다.’

서울 동대문구 A산부인과의 환자 대기실에 붙은 ‘1일부터 행위별수가제에서 포괄수가제로 전환됐다’로 제목의 안내문 내용이다. ‘손해를 감수하고 기존에 해왔던 대로 의료를 시행하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지 않겠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안내문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추가 응급수술을 포함해 치료에 필요한 모든 약제와 영양제, 일회용 수술포는 이미 진료수가에 포함돼 있다. 수술 시 포괄수가제가 적용되지 않는 별도의 질환이 발견되면 행위별수가로 청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 B안과에서는 원장이 정부의 포괄수가제 안내 책자를 환자에게 보여주고 단점을 설명했다. “환자의 선택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겁니다. 환자마다 필요한 치료가 다른데도 치료비가 정해져 있으면 각각의 상태를 감안하기 어렵습니다. 의료를 획일화하는 게 이 제도의 문제점입니다.” 그는 환자들이 자신의 말을 듣고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한다고 주장했다.

7개 질환군을 대상으로 하는 포괄수가제가 전국의 병의원에서 사실상 처음 시행된 2일의 풍경이다. 포괄수가제에 반대하는 의료인들이 환자에게 제도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함으로써 불안감을 조성하는 셈이다.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갤럽 여론조사에서 52.9%가 포괄수가제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회원들이 직접 병의원에서 환자들에게 제도를 홍보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의료 현장에서 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울 중구의 C산부인과 관계자는 “1998년부터 포괄수가제를 실시해 왔기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강동구 D산부인과 원장도 “환자들이 불편해하는 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자들은 불안하다는 반응이었다. 이날 산부인과를 찾은 20대 여성은 “(제도 시행으로) 조금 불안하다. 그렇지만 왜 불안한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모 씨(46·경기 안양시)는 “제도는 잘 모르지만 정해진 가격에 진료를 받는 건 좋은 것 같다”고 얘기했다.

환자단체들은 의협을 비판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사들이 진료나 더 열심히 하지, 왜 진료시간에 제도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지 모르겠다”며 “의료제도는 객관적으로 평가해 (존폐를) 결정하면 되는데, 충분치 않은 진료시간에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8개 소비자단체도 공동 논평을 내고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수술 거부가 철회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의협은 이후 더이상 국민건강권을 위협하는 집단이기주의를 보여선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또 건강보험정책심의의원회(건정심)의 구조를 개편해 의료계 대표가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는 의협의 주장에 대해 “건정심은 실질적으로 의사를 가장 많이 포함시키고 있다. 국민의 건강이나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보다는 의사집단의 경제적 이해를 관철하겠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라는 격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포괄수가제#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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