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군 송지면 11남매 다둥이 가족이 손에 손을 잡고 활짝 웃으며 동네 산책길에 나섰다. 앞줄 왼쪽부터 예진(7), 아령(11), 예령(5), 예지(8). 뒷줄 왼쪽부터 아연(18), 성환(9), 전영선 씨, 성관(17), 아영(15), 예은(3). 대학에 다니는 큰딸 아미 씨(22)와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공장에 취직한 둘째 아람 씨(20)는 외지에 살아 사진을 찍지 못했다. 해남=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엄마, 예은이가 옷에 똥을 쌌는데 내가 치웠어. 나 잘했지.”
일곱 살 예진이는 밭일을 마치고 현관에 들어서는 엄마를 붙잡고 동생을 챙긴 일을 자랑했다. 엄마는 “오메! 우리 아홉째가 큰일 했네”라며 예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니만 칭찬받는 게 샘이 난 것일까. 열째 예령이(5)는 “엄마 화장지는 내가 가져다줬어”라고 끼어들었다. 27개월 된 막내 예은이는 언니들 이야기를 알아들었는지 “똥! 똥!” 하면서 손가락으로 엉덩이를 가리켰다. 배시시 웃는 예은이 얼굴이 돌담자락에 핀 노란 민들레와 닮았다.
지난달 28일 오전 전남 해남군 송지면 학가마을. 11남매 집은 해남과 진도 사이 만호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야트막한 야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딸 아홉에 아들 둘을 둔 다둥이 엄마 전영선 씨(43)는 기자를 보자마자 “집안이 전쟁터 같죠”라며 거실에 널린 옷가지며 책을 치웠다.
전 씨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가 편치 않다. 지난해 12월 31일 남편 강동석 씨(51), 막내 예은이와 함께 땅끝마을 해넘이를 보고 돌아오다 사고를 당했다. 이들이 40일 넘게 병원 신세를 지는 동안 집안은 아이들이 꾸려갔다. 큰딸 아미 씨(22)는 경기 수원시에서 대학을 다니고 둘째 아람 씨(20)는 경기 용인시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공장에 취직해 집을 떠나 있다. 전 씨는 셋째 아연(18·고2)이와 장남 성관(17·고1)이가 동생들을 살뜰히 챙겨 집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철없는 줄 알았던 아이들이 엄마 아빠 없이 추운 겨울을 나는 것을 보고 ‘다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 씨는 “아이들을 키우며 종종걸음 치고 다녔던 다리를 이젠 좀 펴고 산다”며 웃었다.
전 씨에게는 아침이 가장 바쁘다. 아이들 깨우고, 밥 먹이고, 머리 감기고, 옷을 입혀 학교 보내고 나면 한마디로 진이 빠진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연이와 성관이는 기숙사에서 생활해 손이 갈 일이 없지만 초중학교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다섯째부터 막내까지 7명을 보살피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가끔 딸들이 예쁜 옷을 서로 입겠다고 다투거나 밥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리는 날이면 집안은 그야말로 난리법석이다. 전 씨는 “아침에 바쁠 때는 아이들 이름도 헷갈린다”며 “그래도 애들이 손잡고 학교 가는 걸 보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11남매집 거실 냉장고에 붙여놓은 스티커. 여섯째 딸 아령이가 엄마 생일을 축하한다며 붙여 놓았다.전 씨 부부는 처음부터 아이를 많이 낳을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처음 딸 셋을 낳고 아들 없는 게 서운해 하나를 더 낳았다. 그런데 그 아래로 아이가 생겼고 또 한두 살 터울로 아이가 태어나다 보니 11남매가 됐다. 그럼 열두 번째 아이도 낳을 생각이 있는 걸까? 전 씨는 “이제는 그만 낳아야죠”라며 수줍은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다둥이네는 지금까지 가족여행 한번 가보지 못했다. 온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도 없다. 아이들이 많아 여행은 엄두도 못 냈다. 사진은 아이가 자꾸 생기는 바람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못 찍었다. 외식이라고 해봤자 집에서 자장면을 시켜 먹는 게 고작이다. 그것도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날 얘기다.
김 양식과 3.5t 배로 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리는 부부는 벌이가 시원치 않다. 아버지 강 씨는 “꽃게나 낙지, 서대를 많이 잡으려면 먼바다에 나가야 하는데 집에 있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11남매나 되다보니 양육비와 교육비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비뚤어지지 않고 학원 한 번 보내지 않아도 공부를 잘하는 게 기쁨이자 행복이다.
주위의 도움도 큰 위안이 됐다. 지금 살고 있는 방 5개 딸린 2층 집은 2년 전 LIG손해보험과 누리꾼, 주민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 돈을 모아 옛집을 헐고 지어준 것이다. 40년 넘은 낡은 집은 너무 좁아 가족이 한자리에서 밥을 먹기도 힘들 정도였다. 예은이가 태어나면서 받은 출산장려금 580만 원도 어려운 살림에 보탬이 됐다.
“살면서 아이들에게 꼭 일러두는 게 있어요. 그동안 받은 도움을 잊지 말고 베풀라고요.” 기초생활수급자인 전 씨는 매년 적은 돈이지만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꼬박꼬박 낸다. 거동이 불편한 동네 노인들의 반찬도 챙긴다. 나눔이 곧 행복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일깨워 주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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