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재활용품 판 돈으로 이웃 도와… 우리 아파트엔 사람냄새 물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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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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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장동 임대아파트 ‘어머니회’

부산 사상구 학장동 학장도개공영구임대아파트 113동 어머니회 회원들이 재활용품을 팔아 마련한 수익금을 사회봉사단체에 내놓아 따뜻함을 전하고 있다. 학장동 어머니회 제공
부산 사상구 학장동 학장도개공영구임대아파트 113동 어머니회 회원들이 재활용품을 팔아 마련한 수익금을 사회봉사단체에 내놓아 따뜻함을 전하고 있다. 학장동 어머니회 제공
부산 사상구 학장동 학장도시개발공사 영구임대아파트에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한 집 면적이 39.6m²(약 12평)밖에 안 되지만 높아만 가는 고층아파트 담을 낮추고, 단단한 화석으로 변해가는 도시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이야기가 듬뿍 배어 있다.

이 아파트 113동은 국가유공자와 기초생활수급자, 산재 장애인 등 150가구가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 못하지만 마음만큼은 어느 아파트 부럽지 않게 따뜻하다.

이 아파트에 사는 어머니 10여 명은 1999년 ‘어머니회’를 만들었다. 어떤 어려움이나 위기가 닥치더라도 자식 키우는 어머니 마음이면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부녀회’ 대신 ‘대한학장도개공 임대아파트 어머니회’로 사상구청에 정식 등록했다. 가정에서부터 시작해 동네 구석구석까지 밑거름이 되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 봉사하자고 뜻을 모았다. 창립회원들은 이제 모두 세상을 떠났다. 현재 회원은 17명. 반장을 맡고 있는 50대 어머니 두 사람을 빼면 평균 연령이 70대에 육박한다. 최고령인 정분순 할머니(85)가 명예회장을, 백점선 할머니(78)가 고문을 맡고 있다.

회원들은 주민들이 내놓은 재활용품을 공병, 폐지, 고철류 등으로 다시 분류해 고물상에 팔았다. 한 달 평균 수익금은 24만 원 선. 어머니 회원들에게 경비아저씨 박종선 씨(73)의 도움은 큰 힘이 됐다. 이 돈을 모아 아파트 안 여유 공간에 주민들이 쉴 수 있도록 의자를 설치했다. 조그만 운동장에는 청소년을 위해 배구대, 농구대, 철봉 등 운동기구를 설치했다. 지하실에 마련된 공동생활 공간에 알루미늄 문을 설치하고 비바람과 먼지로 더러워진 아파트 창문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어버이날 등에는 풍물, 탈춤, 민요, 주민노래대회 등 한마당 잔치도 연다.

올해는 더 의미 있는 곳에 수익금을 사용해 보자며 최근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에 100만 원을 기탁했다.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에도 100만 원을 기부했다. 기부한 돈은 원래 동네 어른들을 위한 효도관광에 쓸 계획이었다. 하지만 어른들이 먼저 나서 “땀이 밴 수익금을 우리도 보람 있게 한번 써 보자”고 뜻을 모아 성사된 것. 어머니회 총무 역할을 하고 있는 권정시 씨(64)는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지만 이웃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결성된 어머니회가 우리 아파트의 ‘행복열쇠’”라고 자랑했다.

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영구임대아파트#학장도시개발공사#어머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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