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없앤다더니… 중학생 또 투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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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영주서… “서클가입 안 한다고 때려” 유서
폭력조직 연관여부 수사… 교과부 긴급 대책회의

경북 영주에서 같은 반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한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2월 대구 D중학교 자살 사건이 발생한 지 119일 만이다.

16일 경북 영주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4분경 Y중학교 2학년 이모 군(13)이 자신의 집인 영주시 휴천동의 한 아파트 20층에서 투신해 숨져 있는 것을 관리사무소 직원 우모 씨(41)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 군이 뛰어내린 옥상에는 그의 가방과 A4 용지 1장 양면에 연필로 작성한 장문의 유서와 휴대전화가 있었다. 이 군은 유서에 “학교 폭력 때문에 자살한다”는 내용을 남겼다. 이어 “침을 묻히는 것이 더럽고 싫었다. 그중 한 놈은 게이다. 그 녀석은 내 뒤에 앉았는데 교실에서 매일같이 나를 괴롭혔다”고 적어 놓았다. 이 군은 이날 오전에 휴대전화로 같은 반 친구에게 “오늘 늦겠다. 학교에 얘기 좀 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채널A 영상] 이 모 군, 심리검사 결과 ‘자살 고위험’…특별한 조치 없어

○ 학교 폭력 피해에 대해 수사

경찰은 “같은 학교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이 군의 유서가 나온 만큼 학교 폭력에 따른 자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경찰은 유서에 이 군을 괴롭힌 것으로 나와 있는 J 군(13)과 C 군(13) 등 2명을 불러 유서에 나온 괴롭힘과 폭력 행위가 있었는지 조사 중이다. 특히 이 군이 J 군에게 강한 감정을 드러낸 만큼 사실 여부를 따질 계획이다. 또 유서에 서클에 가입하면 때리지 않겠다고 한 점으로 미뤄 폭력조직과 연관돼 있는지도 수사할 방침이다. J 군 등은 경찰조사에서 “교실에서 끌어안고 뽀뽀하고, 미술시간에 붓으로 물을 튀기는 등 이 군을 괴롭힌 적이 있다”고 일부 혐의를 인정했지만 “친구끼리 장난으로 한 짓이다.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착한 아이였는데…”

이 군의 유족은 ‘아직 믿기지 않는다’며 침통해했다. 아버지 이모 씨(46)는 “막내아들이 유서에 나온 내용을 평소에도 몇 번 이야기했는데 ‘그 나이 때는 다 그런 것 아니냐’는 식으로 넘겼다”며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라며 괴로워했다. 그는 지난해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이후에도 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했다.

이날 오후 5시경 이 군이 다니던 학교는 평소와 다름없이 평온했다. 학교 측에 따르면 숨진 이 군은 물론이고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2명 모두 평범한 학생으로 징계를 받거나 문제 학생으로 지적된 적도 없다. 이들 3명은 같은 반 학생으로 가해 학생들이 이 군에게 가입하도록 강요한 서클은 학교에 등록된 것이 아니라 학생끼리 만든 음성 서클이었다.

한편 이 군은 지난해 5월 교육청이 실시한 정서행동발달검사에서 ‘우울’ 등 일부 항목에서 일반 학생과 달리 지수가 높게 나와 한 달 뒤 재검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측은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고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뒤 8회에 걸쳐 심리치료를 실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날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했다. 교과부는 성삼제 학교지원국장을 영주로 급파해 유가족을 위로하고 경북교육청에 24시간 상황반을 가동하도록 했다.

영주=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노인호 기자 inho@donga.com  
#중학생자살#학교폭력#왕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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