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식 물푸레 대표 “국졸… 검정고시 시작한 45세에 행복 시작될 줄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4일 03시 00분


■ ‘긍정 심리학의 행복’ 출간하는 우문식 물푸레 대표

‘행복 메이커’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우문식 물푸레 대표가 3일 서울 광화문에서 빗줄기 사이로 활짝 웃고 있다. 학벌, 집안, 나이의 걸림돌을 딛고 긍정으로 삶을 변화시켜온 인생이 그의 얼굴에 담겨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행복 메이커’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우문식 물푸레 대표가 3일 서울 광화문에서 빗줄기 사이로 활짝 웃고 있다. 학벌, 집안, 나이의 걸림돌을 딛고 긍정으로 삶을 변화시켜온 인생이 그의 얼굴에 담겨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남편을 한국에 초청해주시고 잘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경기 안양시에 자리한 직원 5명 규모의 출판사 물푸레의 우문식 대표(57)는 2005년 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현 국무장관)의 자필 편지를 받은 순간을 잊지 못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마이 라이프’(2004년) 한국판을 출간한 우 대표는 그해 2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서울로 초청해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과 800여 명의 정치인 기업인 외교사절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당시 우 대표의 극진한 의전에 대한 감사 표시로 힐러리 클린턴 의원이 남편 대신 손수 편지를 써 보낸 것이다. 》
2005년 ‘마이 라이프’ 한국어판 출판기념회에서 자리를 함께한 우문식 대표(오른쪽)와 저자인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우문식 대표 제공
2005년 ‘마이 라이프’ 한국어판 출판기념회에서 자리를 함께한 우문식 대표(오른쪽)와 저자인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우문식 대표 제공
최강대국의 정상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은, 이 성공한 출판인은 놀랍게도 마흔다섯 살까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인 학력을 숨기고 살았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최근에 긍정심리학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9일엔 첫 저서 ‘긍정심리학의 행복’도 출간한다. 3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우 대표는 “단기간에 목표를 이루지 못해 불안해하기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조금씩 변화해가는 과정을 즐기라”며 국졸 출판인에서 늦깎이 박사과정 수료생이 되기까지의 사연을 들려줬다.

그는 충북 충주시의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에 그를 포함해 형제가 여덟이었다. 일찌감치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뒤 농사짓고 나무를 했다. “서울에서 출판사에 다니던 형이 동아일보를 부쳐줬어요. 그때 신문을 읽으며 얻은 지식과 독서습관이 훗날 안양에서 서점을 차리고 출판사를 시작하는 데 밑거름이 됐지요.”

그가 학력의 벽을 실감한 계기는 정치에 뜻을 두면서 찾아왔다. 1980년대 후반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가 ‘민주청년정치학교’라는 이름으로 당내에 개설한 청년 정치지도자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기수 회장으로 뽑히면 다음 선거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공천 우선권을 준다고 했다. “대단한 기회였지만 가슴앓이를 시작했지요. 공천을 위해 신원조회를 하면 국졸이라는 게 만천하에 드러날 테니까요. 그동안 사람들을 속이려던 뜻은 없었어요. 출판사 대표인 제가 당연히 대학을 나온 줄 알고들 있는데, 제가 나서서 국졸이라고 정정하긴 어려웠죠. 부끄럽기도 했고요.” 그는 결국 기수 회장이 되겠다고 나서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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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대표는 두 차례 학력을 속인 적이 있다고 했다. 군대에 가고 싶어 서류에 ‘고졸’이라 쓰고 육군으로 복무했다. 또 한번은 교회에 다니려고 신청서를 쓰는데 학력을 적는 칸이 있었다. ‘하나님, 제가 언젠가는 꼭 대학을 졸업할 테니 이번만 용서해 주세요.’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한 뒤 떨리는 펜으로 ‘대졸’이라고 적었다. “솔직히 돈만 내면 손쉽게 학력을 위조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끌린 적도 있어요. 하지만 떳떳하게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 졸업장을 받아 정면 돌파하기로 했습니다.”

먹고살기 바빠 차일피일하다 마흔다섯 되던 2000년에야 공부를 시작했다. 검정고시 학원에서는 합격 가능성이 낮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가족이 잠든 밤에 몰래 깨어 독학하는 수밖에 없었다. “두 아들도 제가 대졸인 줄 알고 있었거든요. 처음 20일간은 영어와 수학이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파 밥을 못 먹을 정도였어요.” 중년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시작한 공부는 점차 행복으로 변해갔다. 정치인의 꿈 대신 공부의 기쁨이 그의 가슴을 채웠다.

검정고시에 합격한 우 씨는 꿈에 그리던 대학 공부를 마쳤고 안양대 일반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지금은 ‘긍정심리학이 조직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박사 학위논문을 쓰고 있다. 한국긍정심리연구소를 설립해 이달 말부터 긍정심리학 강의도 시작한다. 설립은 이미 작년에 했고 강의가 이달 말부터 시작한다.

우 대표는 2006년 자신의 출판사에서 ‘긍정심리학’을 출간한 마틴 셀리그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교수의 방한을 계기로 긍정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긍정심리학이란 불안이나 우울, 스트레스와 같은 부정적 감정보다 개인의 강점과 미덕 등 긍정적 감정에 초점을 맞춘 심리학의 새로운 연구 동향으로, 셀리그먼 교수는 이 분야의 창시자로 꼽힌다. “‘물질적 조건만 찾기보다는 행복에 대한 시각부터 바꾸라’는 셀리그먼 교수의 조언이 귀에 꽂히더군요.”

스스로를 ‘행복 메이커’라고 부르는 우 대표는 긍정심리학을 공부하고 주위에 행복을 전파하면서 인생의 새 막을 열고 있다. “정치? 전혀 미련 없습니다. 예전에는 세상을 바꾸려면 정치를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젠 긍정심리학을 통해 개인과 사회를 행복하게 바꾸는 것이 꿈이지요.”

마흔다섯에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한 그에게 나이를 핑계로 도전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한마디 건네 달라고 부탁했다. “인생 100세 시대인 요즘 40대는 중년이 아니라 청년인데 뭘 못하겠습니까.”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우문식#물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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