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시간 굶다 숨진 ‘8개월 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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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엄마, 산후우울증에 부부불화 겹쳐 발로 차고 방치

심각한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던 엄마가 설사에 시달리는 생후 8개월 된 딸을 발로 차고 38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이지 않은 채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생후 8개월 된 딸을 숨지게 한 혐의(아동학대 및 유기치사)로 주부 김모 씨(29)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6일 밝혔다. 김 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자택에서 설사와 고열 증세를 보인 딸을 이불에 말아 발로 수차례 걷어차고 방치해 19일 오전 10시경 사망케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김 씨는 딸이 숨진 뒤 8시간 만에 남편과 함께 딸을 병원 소아과 응급실로 데려갔다. 병원 의사는 “사망한 지 오래된 여아 시신이 도착했다”고 직접 경찰에 신고했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우울증 증상을 숨긴 채 “딸이 휴대전화 충전기 줄에 감겨 숨졌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김 씨의 행동이 수상하다고 여겨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결과 장기간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방치돼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답을 받았다. 소아과 전문의들도 “딸의 영양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돼 사망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의견을 밝혔다. 경찰은 병원 진료기록 등을 파악해 김 씨가 심한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특히 딸이 지난해 6월 수분 및 영양 부족으로 급성 신장기능 상실증을 앓았다는 점도 확인했다. 결국 경찰은 김 씨로부터 아이의 양육을 소홀히 하고 장기간 방치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생후 8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김 씨의 집은 장기간 청소한 흔적도 없었다.

부부의 불화도 김 씨의 산후우울증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됐다. 주민에 따르면 김 씨 부부는 매일같이 소란스럽게 부부싸움을 해 이웃들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원인 미상의 돌연사로 결론이 날 뻔했지만 추가 조사로 출산 이후 우울증을 앓는 김 씨가 남편과 지속적인 갈등과 극단적인 마찰 속에 아이를 돌보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김 씨는 사건 이후에도 우울증이 호전되지 않아 죄책감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민수 고려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교수는 “심각한 산후우울증으로 정신이 불안해지면서 생기는 공격성이 옆에 있는 아이에게 전달될 수 있고 심하면 살해충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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